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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오페라단 세종시즌 개막작
오페라 <사랑의 묘약> 앙코르 공연
서울시오페라단의 세종 시즌 개막작 도니체티의 “사랑의 묘약”(L'elisir d'amore)이 작년 5월에 이어 10개월만인 지난 3월 22일부터 25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올랐다. 작년 공연을 놓친 관객들의 아쉬움을 달래줄 재공연으로 작년의 연출 그대로 군인 벨코레의 역할만 좀 더 마초 적으로 강화했다고 한다.
가에타노 도니체티(Domenico Gaetano Maria Donizetti)가 펠리체 로마니(Felice Romani)의 대본을 바탕으로 작곡한 2막 오페라 <사랑의 묘약>(1832년 밀라노에서 초연)은 오페라가 익숙하지 않은 초심자들도 어렵지 않게 입문할 수 있는 유쾌한 희극성이 특징인 작품으로 서울시오페라단의 공연에는 이탈리아 출신의 쟈코모 안드리코(Giacomo Andrico)의 무대 디자인과 로잔나 몬티(Rosanna Monti)의 의상 디자인, 크리스티나 페촐리(Cristina Pezzoli)의 연출로 한국적인 풍경과 동화적인 서정성이 더해졌다.
사실 수많은 반전과 긴장감이 넘치는 드라마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이 작품은 그다지 매력적인 이야기라고 보기 어렵고, 특히 성인 관객들에게는 캐릭터가 지나치게 순수하고 동화적이라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 오페라가 남녀노소 세대와 문화를 초월해 사랑받는 이유는 역시 아름다운 음악의 힘이라 할 수 있다. 특히 2막에서 네모리노가 부르는 아리아 “남몰래 흘리는 눈물”(Una furtiva lagrima)이 많은 사랑을 받는다.
이미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많이 알려진 내용과 음악이기에 관객에게 신선함을 주기 위해서는 기존의 무대들과 차별성 있는 연출이 필요한데, 이 공연에서는 주 무대의 시공간을 19세기 이탈리아의 시골 마을에서 시대를 정확히 알 수 없는 한국의 농촌으로 바꾼 것이 이채롭다. 곡식이 무르익은 농촌의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들녘과 무대 한 모퉁이를 가득 채우고 서 있는 아름드리나무는 하얀 한복을 입은 농사꾼들과 빨래하던 아낙네들을 품으며 정겨우면서도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또한, 경사진 언덕의 무대는 공간감뿐 아니라 여러 가지 극적 연출에도 효과적이었다. 인물 간 서 있는 언덕의 위치에 따라 주요 배역의 신분 차이가 시각적으로 드러나기도 하고 심리변화나 태도 변화에 따라서도 인물의 위치가 변하는 것 등이 시각적으로 느껴지니 이탈리아어로 하는 노래와 연기지만 각 배역의 감정 및 심리의 변화를 인지하기가 쉬웠다. 노을빛 하늘을 배경으로 금빛의 독일제 체펠린 비행선을 타고 약장수 둘카마라가 등장하는 장면은 마치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중 한 장면 같았다.
극의 연출에서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은 군인들에 대한 묘사다. 특히 군의 제식에 대한 표현이 너무 형편없다. 개선행진 하듯 군인들이 입장할 때부터 오와 열이 엉망이고 무엇보다 발이 전혀 맞지 않는다. 한국이 징병제 국가이므로 관객 중엔 군필자들이 많다. 그런데 이날 공연에서 묘사된 군인들은 정예병들이라기보다는 급조된 오합지졸들처럼 너무 우습게 보이는지라 벨코레의 배역이 별로 마초적이라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동화적인 묘사를 기본 정서로 두고 있어서인지 주인공 네모리노와 아디나 사이의 로맨틱 코미디적 애틋함이나 달콤함이 별로 부각되지 않는다.
민정기가 지휘한 ‘오케스트라 디 피니’(Orchestra di PINI)의 반주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음향적 한계와 도니체티 음악의 특징으로 힘 있는 꽉 찬 울림은 없지만, 피아니시모가 갖는 매력을 십분 활용해 동화적인 연출에 녹아들며 감정의 흐름을 조용히 받쳐주었고, 개막일 공연의 주인공인 아디나 역의 손지혜는 새침한 연기와 빼어난 노래로 관객들을 매료시켰으며 네모리노역의 허영훈의 목소리는 힘이 다소 부족했지만 부드러운 발성으로 시골의 순진하고 순박한 농부를 넉살스러운 연기와 호소력 있는 노래로 표현했다.
류창순 객원기자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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