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 작곡가의 3색 콘서트_상주작곡가 노재봉 신작 ‘디오라마’, 국립심포니 위촉 세계 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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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때론 전쟁과 폭력의 시대를 넘어 인간성과 평화에 대한 염원을 노래한다.
프로코피예프의 '교향곡 5번'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4년 작곡됐다. 웅장한 교향곡은 고전적 형식 위에 현대적 음악어법을 더해 관악기의 화려함과 현악기의 명상적 흐름 속에서 인간 정신의 회복을 힘 있게 그려낸다.
프로코피예프 스스로 이를 “자유롭고 행복하며 강한 인간 정신에 대한 찬가”라고 정의했듯, 이번 연주는 혼란과 상처의 시대 속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를 성찰하는 시간을 선사한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는 <제256회 정기연주회>로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5번’을 6월 1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올린다.
불안한 시대를 꿰뚫는 음악의 질문 거짓, 폭력, 절망 넘어 이면의 평화 서로 다른 시대의 3색 콘서트_ 프로코피예프, 파질 사이, 노재봉 노재봉_상주작곡가 신작 '디오라마' 초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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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연은 홍석원 지휘로 ‘거짓’, ‘폭력’, ‘절망’을 조명하며, 그 이면에 담긴 평화를 되새긴다. 첼리스트 카미유 토마가 협연해 파질 사이의 첼로 협주곡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 op. 73을 연주한다.
프로코피예프(1891~1953), 파질 사이(1970~), 노재봉(1995~) 등 서로 다른 시대를 비추는 세 작곡가의 시선을 통해 혼란과 불안을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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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봉 ⓒ BAKI |
공연의 포문은 상주작곡가 노재봉(2024~2025)의 신작 ‘디오라마’가 연다. ‘탈진실’이라는 사회적 현상을 그린 이 작품은,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흐려진 시대를 음악언어로 증언한다.
노재봉은 사슴의 울음소리를 흉내 내어 실제 사슴을 유인하는 사냥 도구, ‘엘크 뷰글’을 특수 악기로 사용한다. 가짜 소리로 진짜를 속이는 이 도구의 아이러니는 작품의 주제를 상징하며, 인공적으로 꾸며진 세계, 일종의 ‘디오라마’를 오케스트라 사운드로 구현한다.
노재봉 작곡가는 이번 공연에서 초연되는 <디오라마>를 쓰게 된 계기를 지난 2024년 가을, 한 음모론자를 통해 만나게 되었다. 거짓을 진실로 믿는 사람들의 세계. 그것이 마치 축소된 모형으로 만든 공간, 다시 말해 디오라마처럼 보였다고 말하는 노재봉 작곡가. 그는 소리의 모방을 통해 거짓들을 증폭시킨 뒤 끝내 이 모든 것의 경계를 무너뜨려 내가 속한 곳이 어디인지를 우리에게 묻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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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유 토마 (c) Julien Mignot |
튀르키예 출신 작곡가 파질 사이의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Never Give Up)’는 폭력과 억압에 맞서는 인간의 저항과 희망을 그린다. 튀르키예 반정부 시위의 무력 진압, 2015년 파리 테러 등 현실의 비극을 담은 이 곡은, 첼로의 날카로운 파열음과 민속 선율을 통해 사회적 갈등과 분열을 고발한다. 그러나 그 끝에서 ‘희망을 잃지 말자’는 강인한 메시지를 던진다.
협연자로 카미유 토마가 함께 한다. 팬데믹 당시 파리 명소와 지붕 위에서 연주를 선보여, ‘지붕 위의 첼리스트’로도 잘 알려져 있는 그는, 자유의 가치를 노래하는 연주로 주목을 받았다. 그의 연주는 파질 사이가 던지는 음악적 질문과 깊이 호흡하며 공명을 이룬다.
공연의 대미는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5번이 장식한다.
세상을 향한 냉소로 삶을 살아냈던 작곡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는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기울던 1944년에 평소 같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어느 날 ‘자유롭고 행복한 인간을, 그의 강력한 힘과 순수하고 고귀한 정신을 노래하고 싶었다’라고 말한 이 작곡가는 단 한 달여 만에 새로운 마음으로 신작, 교향곡 5번을 완성해 냈다.
물론 1930년대에 서유럽에서 소련으로 돌아와 여러모로 불만족스러운 상황에 놓여 있었던 프로코피예프는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예술적 성취와 행복은 국가의 승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하지만 무슨 일인지 그는 교향곡 5번 앞에서만큼은 긍정적이고 싶었다. 거대한 선언처럼 들리는 1악장으로 시작해 작곡가 특유의 냉소가 흐르는 2악장, 무시하기 힘든 불안으로 차 있는 3악장을 지나 경쾌한 리듬감에 희망을 담아내는 4악장까지. 프로코피예프는 특유의 시원시원한 전개로 좀처럼 드러내지 않던 기쁨을 펼쳐낸다.
6.13(금)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program 노트
┃노재봉, 디오라마
만약 세상 일이 만사형통, 잘 닦인 도로와 같다면 이토록 불안해할 일도 분노할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매일 같이 펼쳐지는 일들을 보라. 무언가를 이해한다고 말하기 어려운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러한 이해 불가능의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오늘도 애를 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창작자의 관점에서 이해는 나의 언어로 상황을 다시 써 내려가는 작업을 통해 가능한 것. 이에 진심인 노재봉 작곡가는 이번 공연에서 초연되는 <디오라마>를 쓰게 된 계기를 지난 2024년 가을, 한 음모론자를 통해 만나게 되었다. 거짓을 진실로 믿는 사람들의 세계. 그것이 마치 축소된 모형으로 만든 공간, 다시 말해 디오라마처럼 보였다고 말하는 노재봉 작곡가. 그는 소리의 모방을 통해 거짓들을 증폭시킨 뒤 끝내 이 모든 것의 경계를 무너뜨려 내가 속한 곳이 어디인지를 우리에게 묻고자 한다.
┃파질 사이, 첼로 협주곡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 Op. 73
튀르키예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파질 사이는 유럽과 자국의 급변하는 정치상황과 급증하는 테러에 대한 우려를 지난 2017년에 완성한 첼로 협주곡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에 담아내었다. 작곡가가 즐겨 사용하는 터키 전통 선율과 리듬을 기반으로 연극적인 성격이 강한 첼로 독주가 전쟁터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는 작품. 초연을 맡았던 첼리스트 카미유 토마가 이번 공연의 협연자로 나선다.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5번 Op. 100
때로 이해란 과거의 자신과 그로부터 변화된 현재의 자신을 나란히 놓아보는 것으로도 가능해진다. 세상을 향한 냉소로 삶을 살아냈던 작곡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기울던 1944년에 평소 같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어느 날 ‘자유롭고 행복한 인간을, 그의 강력한 힘과 순수하고 고귀한 정신을 노래하고 싶었다’라고 말한 이 작곡가는 단 한 달여 만에 새로운 마음으로 신작, 교향곡 5번을 완성해 냈다.
물론 1930년대에 서유럽에서 소련으로 돌아와 여러모로 불만족스러운 상황에 놓여 있었던 프로코피예프는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예술적 성취와 행복은 국가의 승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하지만 무슨 일인지 그는 교향곡 5번 앞에서만큼은 긍정적이고 싶었다. 거대한 선언처럼 들리는 1악장으로 시작해 작곡가 특유의 냉소가 흐르는 2악장, 무시하기 힘든 불안으로 차 있는 3악장을 지나 경쾌한 리듬감에 희망을 담아내는 4악장까지. 프로코피예프는 특유의 시원시원한 전개로 좀처럼 드러내지 않던 기쁨을 펼쳐낸다.
_글 윤무진(음악칼럼니스트)
출연진
지휘, 홍석원 (Sukwon Hong, 43)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티롤 주립극장의 수석 카펠마이스터로 활약한 홍석원은 독일음악협회가 선정하는 ‘미래의 마에스트로’에 선발되었고, 카라얀 탄생 100주년 기념 지휘 콩쿠르에서 입상하며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J. 슈트라우스의 오페레타 <박쥐>를 지휘하며 ‘관객 모두를 춤추게 했다’(일간지 티롤러)는 평을 받았다.
그는 국내에서도 평창올림픽 기념 오페라 <동백꽃 아가씨, La Traviata>, 2020년 세계 최초 전막 오페라 프로덕션으로 주목받은 <마농>, 국립극장 재개관 기념 <나부코>, 베르디 <시칠리아의 저녁기도> 한국 초연 등 굵직한 오페라 무대에 서왔다. 그는 광주시립교향악단의 예술감독 재임 시절,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협연으로 ‘베토벤, 윤이상, 바버’(도이치 그라모폰)를 발매하며 화제를 모았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3번 ‘바비 야르’의 한국 초연을 이끈 그는 교향악축제, 통영음악제 등 다양한 축제에 초청받으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첼로, 카미유 토마(Camille Thomas, 37)
팬데믹 당시 ‘지붕 위의 첼리스트’로 이름을 알린 카미유 토마는 2017년 도이치 그라모폰과 독점 계약을 이뤄내며 젊은 첼리스트로서 세상에 데뷔한 한편, 파보 예르비, 미코 프랑크 등 세계적인 지휘자들과의 협연으로 눈길을 끌었다.
특히 그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많은 관심을 둔다. 유니세프의 협력으로 음반을 발매하고, 테러에 대한 목소리를 담아 파질 사이의 첼로 협주곡 ‘절대 포기하지 말라’를 2018년 세계 초연하고, 2020년 음반 ‘희망의 목소리’에 담아 화제를 모았다.
1988년 파리에서 태어난 카미유 토마는 4세 때 첼로를 연주하기 시작했으며 일찍히 음악가로서 소질을 보여 마르셀 바르동에게 사사받았다. 2006년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음대에서 슈테판 포르크와 프란스 헬메르손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바이마르의 프란츠 리스트 음대에서 볼프강 에마누엘 슈미트의 지도하에 대학원 과정을 밟았다.
작곡, 노재봉 (Jaebong Rho 1995, 30세)
국립심포니의 상주작곡가(2024~2025) 노재봉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음악을 택했다. 현재의 사회상에 주목하여 음악의 구조와 연결 짓는 것에 깊은 관심을 둔다.
그 목적은 청중에게 질문을 던지거나, 한 개인으로써 내린 결론을 제시하는 것이다. 부산대학교 졸업 후 부산작곡가협회, 부산작곡마당 등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부산시립교향악단 위촉 작곡가로 선발,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리’를 초연했다.
영화음악 작곡가로서 영화의전당, 한국영화아카데미 등과 함께 협업하였으며, 장·단편 영화 스무여 편에 음악감독으로 참여하였고, 부산독립영화제(제20회), 충무로단편영화제(제9회)에서 음악상을 받았다. 작업한 단편영화들은 부산독립영화제, 미장센단편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정동진독립영화제, 충무로단편영화제, 후쿠오카독립영화제, KBS부산스테이지ON 등 여러 영화제에서 상영되었으며, 장편 영화들은 바르셀로나 아시안섬머필름페스티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었다.
그는 부산대학교에서 작곡 음악학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예일대학교에서 작곡 음악석사 학위 과정 중이다.
연주,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since 1985)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다.‘유연과 참신’이란 정신 아래 관현악·오페라·발레를 아우르는 ‘극장 오케스트라’란 독보적인 위치를 자랑한다. 2022년부터 제7대 예술감독 다비트 라일란트와 함께 베토벤, 베를리오즈, 슈만, 라벨 등 폭넓은 레퍼토리를 선보이며 한국 클래식 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유연과 참신’이란 정신 아래 정통 클래식은 물론 영화와 게임, 온라인 공연에 이르기까지 연100회 이상의 다채로운 무대로 클래식 저변을 확장하고 있는 동시에 미술, 문학 등 다양한 장르와의 협업으로 클래식 음악 감상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또한 연주·작곡·지휘 등 오케스트라의 핵심 분야에서 인재를 발굴, 육성하며 클래식 음악 유산의 전승에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KNSO국제지휘콩쿠르와 KNSO국제아카데미를 통해 세계 클래식 음악계의 동반성장을 도모하며,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미국작곡가오케스트라(ACO) 등 국제적인 기구와 협력하며 한국 클래식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강영우 기자 press@ithemov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