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 유산 담은 역사성 의미 높았으나 신작 확충과 지역미술관 연계 필요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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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제7회 창원조각비엔날레_ ‘큰 사과가 소리없이 (silent apple’>
16개국 86명 작가, 조각 회화 영상 등 177점
국가산업단지 50년, 창원 지역 유산 담은 역사성 의미
규모 확장에도 신작 20% 불과, 지역 미술관 연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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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 '목전주' 2024창원조각비엔날레 |
넓은 공터에 거대한 나무 전주가 하늘 높이 치솟아 있다. 높이 17m, 무게 23t에 달하는 초대형 작품인 조각가 정현의 ‘목(木)전주’(2006)가 미술관 밖, 과거 산업단지였던 창원복합문화센터 동남운동장에 놓였다. 콘크리트 전봇대로 대체돼 쓸모를 다한 목전주를 소재로 한 추상조각은 세월을 넘어 살아내고 견디며 역할을 다한 나무의 힘과 아름다움을 말한다.
정현 작가는 침목, 폐자재, 고철 등 쓸모를 다한 재료를 다루며 시간과 경험의 결이 응축된 재료에 주목함으로써 비조각적 재료를 조각화하는 작업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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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 작가가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_창원 사진_임효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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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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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7일 개막 전, press 투어 현장에서 만난 정 작가는 “산업현장의 장소니까 땀이 흘러내리면서도 위로 뻗어 올라가는 그런 정신을 주제로 했던 작업이다. 당시 전국에서 유일하게 창원 변전소에만 비상용 목전주가 남아 있다는 얘기를 듣고 가져다 쓰게 됐다”고 설명했다. 황량한 운동장에는 ‘목전주’ 앞으로 이유성 작가의 ‘수직 사바아사나’(2024)를 비롯, 남화연, 텐저린 콜렉티브, 조진환의 조각이 흩어져 서 있다.
창원특례시와 창원문화재단이 주최하는 는 올해 ‘큰 사과가 소리없이 silent apple>라는 테마로 9월 27일(금)부터 11월 10일(일)까지 전시장 4곳에서 45일간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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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행사장인 성산아트홀 정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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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의 봄, 백남준 |
<제7회 창원조각비엔날레>는 2010년 문신국제조각심포지엄을 모태로 2012년부터 비엔날레 형식으로 개최해 왔다.
조각의 수평성은 제도 안과 밖을 넘나들고, 조각과 언어, 노동과 산업, 지역과 지역의 관계를 질문케 하는 구체적 단서이자 세계를 보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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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비엔날레에서는 역대 주요 전시장소였던 성산아트홀을 비롯해 1973년 발견된 조개무덤인 사적 제240호 성산패총, 과거 산업단지 근로자의 활동 장소였던 창원복합문화센터 동남운동장, 조각가 문신이 직접 설립한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까지 총 4곳에서 펼쳐진다. 미술관을 나와 도시의 주요장소와 연계한 전시는 비엔날레의 주제가 의미하는 것처럼 사과를 돌려깍기하듯 도시를 돌며 ’도시와 연대하는 조각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한다.
내 자전거 바퀴는 골목의 모퉁이를 만날 때마다 둥글게 둥글게 길을 깍아 내고 있어요.
그럴 때마다 나 돌아온 고향 마을만큼 큰 사과가 소리 없이 깍이고 있네요
_김혜순, 잘 익은 사과 中
창원조각비엔날레는 45일간 16개국 86명(63팀)의 국내외 작가, 협업자와 함께하며 동시대 조각의 수평성, 여성과 노동, 도시의 역사와 변화, 공동체의 움직임 등을 다각도로 다루며 창원을 기반으로 하는 다수의 커미션 신작 등 총 177점을 선보인다. 비엔날레의 제목인 ‘큰 사과가 소리없이 ’는 김혜순 시인의 시 「잘 익은 사과」의 한 구절을 차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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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원 예술감독 |
현시원 예술감독은 ‘큰 사과가 소리없이’라는 주제에 대해 “나선형 시간을 표현하는 사과 껍질의 움직임처럼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예술가와 시민이 도시와 조각, 다양한 감각 안에서 만나며 스스로 길을 내고 연결된다. 창원 도심 전역을 큰 전시 도면으로 삼아 도시 공간을 배경으로 본다. 또 조각과 함께 이동하는 도시의 풍광 자체를 작업의 위상을 결정짓는 주요 매체로 삼아 조각을 둘러싼 다양한 움직임과 목소리를 조명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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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미술관 야외조각 |
조각의 수평성_누워있는 조각들 조각을 바닥에 가깝게 수평적으로 눕혀 본다. 조각의 수평성은 제도 안과 밖을 넘나들고, 조각과 언어, 노동과 산업, 지역과 지역의 관계를 질문케 하는 구체적 단서이자 세계를 보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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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공간과 프로그램의 주제와 방향성은 크게 네 가지로 구성됐다. 성산아트홀 메인 전시장으로 계획도시 창원의 방사형 도로 중심인 창원시청 앞 원형광장에 위치해 동선의 출발지다. 정문 대형창문에는 홍승혜 작가가 영화 (1936)를 차용해 낙하하는 찰리 채플린과 파울레트 고다드의 모습이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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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틀에는 노순현 작가의 조각과 음악이 결합된 ‘조각합주단’ 작품으로 작은 오브제들이 산발적으로 놓여있고 음악이 흘러나온다. 조각과 음악이 공간을 재료로 조각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공간을 유연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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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창원의 봄 |
로비에는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의 설치작품 ‘창원의 꿈’이 관람객을 맞으며 비엔날레에 맞춰 수복작업을 마친 TV모니터에서는 창원의 역사와 미래가 담긴 현란한 영상이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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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상, 소프트조각 |
권오상 작가의 ‘소프트 조각’은 조각가 문신에 대한 오마주로 또 다른 변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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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아키의 '종 bell' 퍼포먼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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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일본 설치작가 온다 아키의 ‘종(Bells)’ 퍼포먼스가 선보였는데, 아키는 2021년 포틀랜드현대미술관에서의 대형 설치작업 ‘종(Bell)’을 재구성해 15년 전부터 수집해 온 유리, 도자기, 흙 등의 소재로 만들어진 각양각색 종을 타원의 하얀 좌대 위에 배치했다. 아키와 음악가 박지하는 종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종들 사이로 걷는 퍼포먼스로 수많은 종에 깃든 시간과 역사를 감지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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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패총 |
성산패총 1973년 11월 창원기계공업단지 조성 공사 당시 발견된 조개무덤으로, 고대 사람들이 먹고 버렸던 조개껍질과 철을 만들던 작업장인 야철지, 삼국시대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다. 공장을 만들기 위해 산을 깎아내던 순간 발견된 성산패총은 생산과 발굴의 이중적인 시간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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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형상 |
언덕을 따라 패총 구릉을 올라가면 푸른 잔디마당에 박석원 작가의 조각 ‘핸들’(1968)과 미카엘라 베네딕토(Micaela Benedicto)’의 ‘거울 형상’ 연작(2023~2024), 2층 유물전시관발코니 기둥에는 최고은 작가의 나선형 조각 ‘에어록’(2024)이 설치돼 있다.
공업단지에서 발굴된 패총은 현대의 조각 작품을 통해 흔적의 먼 시간 넘어 과거와 현재, 미래가 연결된 듯 보인다. 2층 ‘에어록’ 작품 나선형 파이프 사이로 창원의 푸른 산과 공장이 보인다.
현시원 예술감독은 “올해는 창원에 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된 지 50주년이 되는 해다. 창원이 지나온 50년이라는 시간, 혹은 그보다 더 긴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했다. 특히 창원을 대표하는 유적지인 성산패총을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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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패총은 1970년대 창원 국가산업단지 조성 당시 발견된 유적으로, 청동기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 당대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창원의 중요 유적지다. 동남운동장(창원복합문화센터) 1980년‘새마을회관’이라는 이름으로 건립되어 근로자 복지센터와 교육장으로 운영되며 1989년 동남전시장으로 개칭된 이후 복합체(컨벤션센터)로 운영됐다. 정현의 ‘목전주’를 경기도미술관에서 창원의 비엔날레로 이동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해 조각의 과거-현재-미래로의 이동과 공동체의 움직임으로 설명한다
▶ 계속
임효정 기자 Press@ithemov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