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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드라마 <정년이>가 높은 시청률 속에서 막을 내렸다. 역시 영상 매체의 위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웹툰에서 상당한 인기를 얻었고 작년에 국립창극단에서도 <정년이>를 올려 ‘여성국극의 부활’이란 제목의 기사가 나왔다. 그러나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정년이>와 비교해 볼때 대중적 파급력이 영상매체인 TV드라마를 따를 수 없다. 아무튼, 한 때 잊혀진 장르가 대중들에게 다시 소환되자 국극 공연도 무대에 다시 오를 예정이라고 한다. 또한 이러한 관심은 전통공연예술계에도 영향을 미쳐 창극이나 소리극, 판소리 베이스 음악극 전반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리라는 기대감이 그 어느때보다도 높다.
그러나 쉽게 열기가 뜨거워지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차갑게 식는 한국의 현대 대중문화의 흐름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대중적 관심이 몇 달이나 지속될지 알 수 없다. 이럴수록 한순간의 인기보다는 롱런 할 수 있는 비결에 집중하는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얼마 전 타계한 음악학자 이보형의 여성국극에 대한 비평문은 3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그는 “여성국극은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1995년 5월, [춤은 내드름을 어떻게 굴리는가에] 수록)라는 글에서 여성국극이 쇠퇴한 이유에 대해 박황의 「창극사연구」를 인용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예능이 시원치 않은 아류단체의 난립, 둘째, 비속하고 졸렬한 대본, 셋째, 천편일률적 내용, 넷째, 화려한 무대장치, 의상, 합창 군무 등 겉치레에 치중할 뿐 소리와 춤, 연기와 같은 실질적인 공연력의 저하가 결과적으로 청중에게 싫증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1980년대 중반에도 다시 50년대의 여성국극 부흥 운동이 일어났으나 별로 신통치 않았다는 것이다. 조금앵, 김진진, 김효순, 조영숙과 같은 왕년의 국극 명인들이 대거 출연하는 공연인데도 결과가 시원치 않았던 것에 대해서 이보형은 당시 여성국극의 쇠락을 박동진, 박초월, 김소희 명창의 완창판소리 공연 성공과 대비시킨다. 말초적이고 표피적인 화려함 대신에 고도의 예술적 기량이 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의 장르가 롱런하고 고전적 양식으로 지속되기 위해서는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적 가치로서의 예술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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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궁가> 공연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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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실 전통공연예술계에서 이미 새로운 창작극에 대한 성과가 나온지는 꽤 오래되었다. 특히 국립창극단을 필두로 하여 새로운 창작과 이에 호응하는 두터운 관객층이 형성된 지도 근 10여년이 되어간다. 우리나라 창극 역사를 주도해 온 국립창극단은 2012년 국립극장 레퍼토리 시즌 도입 이후에 특별히 더 새로운 레퍼토리를 개발해왔다. 다섯바탕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창조한 <수궁가>, <적벽가>, <흥보씨>, <심청가>, <춘향>, <귀토>, <흥보전>을 비롯해 스릴러 창극 <장화홍련>, 외국 대본을 원작으로 한 <코카서스의 백묵원>, <리어>, <베니스의 상인>, <트로이의 여인들>, <패왕별희>와 앞서 말한 <정년이> 등 새로운 레퍼토리를 개발해 왔고 이에 연극과 뮤지컬에서 저명한 국내외 연출가와 대본가들이 합류하고 창극단의 스타 주인공들을 내세워 창극 매니어들이 형성되는 등 장르의 안착이 이루어진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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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올해 골라서 본 창극과 소리극만 해도 <살로메>, <마당을 나온 암탉>, <오버더떼창: 문전본풀이>, <방탄철가방>, <구구선 사람들>, <오류의 방>, <적로>, <리어>, <만신: 페이퍼샤먼>, <변강쇠 점찍고 옹녀>, <이날치전> 등이 얼핏 생각난다. 그러나 이 정도의 관람으로 올해 전통에 기반한 음악극 전체를 고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만큼 판소리 기반의 소리극과 창극, 음악극 제작이 그 어느때 보다도 활발하다는 것을 입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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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의 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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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창극, 소리극, 국악뮤지컬, 음악극, 국극 등을 종합하여 보통 명사로서 음악극으로 통칭하려 하는데 음악극은 결국 음악+극의 결합이라 할 수 있다. 창작음악극의 경우 극적 요소는 일단 대본가의 역량에서 성패가 갈리고 음악적 요소는 판소리 베이스 노래를 담당하는 작창자와 여기에 악기 편곡과 새로운 양식의 노래를 만드는 작곡가의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기에 공연예술로 완성시키는 연출적 역량이 극적 요소에 부가되는 것이니 결국 창작적 관점에서 보면 음악에서 작창, 작곡, 극적 측면에는 대본, 연출이 중요하다. 이 네 영역이 고루 균형감있게 예술적 시너지 효과를 가질 때 하나의 종합예술로서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네가지는 제작의 영역이고 결국 실연에서는 출연진들 즉 배우와 악사(기악파트)의 역량이 마지막 성패를 가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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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올해 작품 중 몇 개 기억에 남았던 작품들을 언급하려고 하는데, 기대에 비해 다소 실망스러웠던 작품 중 하나가 <살로메>였다. 창극 <살로메>는 <패왕별희>에 이어 모든 배역을 남성 배우들이 맡아 여성국극의 대척점이라 할 수 있는 남성국극을 연상시켜 화제성 짚은 작품이었다. 김시화 연출의 창극 데뷔작이기도 하고 걸출한 연출가 고선웅이 대본을 맡아 각색하였고 음악감독은 이아람, 작창은 소리꾼 정은혜가 맡아 호화 제작진으로 구성되었다. 주인공인 살로메는 <패왕별희>에서 여장연기로 열연을 보여준 김준수가 맡고 헤로데 역에는 유태평양이 출연하는 등 스타 배우들까지 더해져 국립창극단의 작품인가 착각할 정도로 민간에서는 보기 드문 야심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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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극 <살로메> |
가장 큰 문제는 작창과 이에 대한 편곡이 극의 이면을 그리기 보다는 너무 표피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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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이 있듯이, 이 공연에는 평가의 호불호가 갈렸다. 가장 큰 문제는 연출과 음악이었다. 일단 안무가의 연출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배우들의 움직임과 발림은 정적이었다. 배우들의 몸동작과 동선에 안무적 요소가 세밀하게 적용되었다고 하기에는 2프로 부족하였는데 이러한 아쉬움은 극의 절정인 살로메의 춤에서 정점을 찍었다. 전혀 관능적이지도 예술적이지도 않은 너무나 평범하고 통속적인 춤이어서 실망감은 더욱 증폭되었다.
음악에서는 전통적인 국악 반주에 피아노, 첼로, 전자기타 등의 서양악기를 결합하였고 뮤지컬적인 요소가 보다 강화되었다. 그런데 뮤지컬의 좋은 점(예:음악의 극적 효과나 춤과 연기, 음악의 균형)보다는 마이크 확성의 과다 사용으로 볼륨 과잉과 같은 안좋은 점만 모방한 느낌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작창과 이에 대한 편곡이 극의 이면을 그리기 보다는 너무 표피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좀더 자세히 말하자면 천편일률적으로 극의 흐름과 맞지 않게 각 단락의 종지를 4, 5도 올려서 갑작스런 상행 종지를 통해 무리하게 박수를 이끌어내려는 것이나 극의 전개에서 긴장이 높아질 때는 시종일관 자진모리 장단을 주로 사용한다던가, 계면 일색으로 선법과 조가 단조롭게 사용되면서 슬픈 것은 계면 일색의 신파조이고 극적 긴장을 높일 때는 소리를 고래 고래 지르는 듯한 과잉된 가창이 이어졌다. 한마디로 천편일률적인 음악 전개 속에 음악이 드라마를 풍부하게 그려내기 보다는 말초적이고 자극적인 효과음향으로 사용되든 듯, 그냥 소모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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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나온 암탉 |
4.
요사이 창작 창극이 무대 장치, 연기, 노래와 춤, 조명과 의상 등 공연적 관점에서는 연극과 뮤지컬의 장점을 받아들여 진일보하고 있고 이로써 창극 애호가들을 두텁게 창출하였다는 점은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바야흐르 창극의 전성시대가 도래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런데 이럴 때 일수록 여성국극이 예술적 깊이 없는 말초적인 포장만으로 최고의 자리를 유지할 수 없었던 점을 반면교사로 삼아 극에서 가장 중요한 음악(작창과 작곡)에 좀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창극은 본디, 우리 전통에서 가장 우수한 음악극이라 할 수 있는 판소리에서 출발한 만큼, 창극의 음악적 내용이 판소리의 우수했던 극적 이면을 그린 과거의 양식적 다채로움으로 십분 채워지지 않는다면 언제 여성국극과 같은 운명을 걸을지 모를 일이다. 한 때 유행한 악극이나 여성국극처럼, 잠시 특정 시대에 유행한 통속적 한국 뮤지컬로 치부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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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창극에서 작창의 문제는 비단 <살로메>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정도 차는 있으나 고전 판소리를 재연하거나 각색하는 경우를 제외한 대부분의 창작 창극에서 필자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작창을 하는 소리꾼이 얼마나 소리 속을 깊이 알아 각 상황과 역할, 장면에 맞는, 즉 이면에 맞는 다양한 소리 길을 사용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 때가 한두번이 아니라는 점이다.
창극이나 소리극에서 기존 전통 소리에 다양한 동서양의 악기를 더하여 편곡을 통한 음악적 외연을 확장하는 시도가 이루어지면서 음악감독이나 작곡각의 역할이 증대되고 있기는 하나 그렇다고 작창자의 역할이 축소된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창극의 음악적 근간은 판소리이기 때문에 음악컨텐츠의 구조나 내용은 작창의 성패에 많이 좌우된다. 그러므로 창작 창극에서 판소리양식을 사용할 때 판소리의 여러 조와 이면에 따른 다양한 스타일과 장단과 말붙임새 등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의 문제는 항상 중요하다. 대부분의 창극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좀더 다양한 조가 상황에 맞게 사용되었으면 좋을 터인데, 하나의 청(key)으로 그것도 상당 부분이 계면조로 노래하고 본청으로 끝난다는 점이다. 이는 자칫 판소리는 하나의 선법과 key만 있는 단조로운 양식으로 오해 받을 여지를 준다. 이 지점에서 여성국극 역시 신파조 대사가 계면위주의 단조로운 토리와 맞물리면서 지루함과 단조로움을 노정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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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나온 암탉 |
앞에서 언급했듯이, 창작 창극에서 작창에서 판소리적 요소를 사용할 때 주로 계면 위주로 이루어지고 조옮김이나 조바꿈이 없이 항상 본청으로 종지하는 경향은 반종지나 위종지를 통해 다음 곡을 이끌어 내오는 음악적 연출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과 상통하는데 이는 모든 노래가 다 다장조의 으뜸화음으로 끝나 음악적 추진력이 생기지 않는 경우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우조와 평조. 덜렁제와 경드름, 시조목 등 비(非)계면 선법을 상황과 인물에 맞게 잘 쓰는 창작 판소리는 보기 드물다. 대한민국 최고의 창극이라고 여겨지는 국립창극단의 공연에서도 새로운 판소리적 작창을 너무 피상적이고 상투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건 아닌지 안타까울 때가 종종 있다. 이런 작창의 상투성은 수많은 창작극 작창에서 발생하는 문제로서 소리꾼들의 전통판소리에서 사용되는 여러 길과 조에 대한 깊이 있는 공부와 분석 및 창작으로의 수준 높은 적용이 절대절명으로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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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극 <적로> |
그렇다면 요사이 창극에서 판소리적 작창에서 하나의 키로 모든 종지나 낭송이 계면의 본청으로 끝나는 선율의 단조로움을 어떻게 극적 변화에 맞게 극복하고 있는가? 가장 쉬운 방법은 장단의 변화로 극적 전개를 이끌어가는 것이다. 뭔가 상황을 담담하게 설명할 때는 중모리, 긴박한 상황에서는 자진모리나 휘모리 등을 사용하는 것이 단적인 예이다. 이렇듯 장단 변화는 어느정도 수긍이 가는 창작 운용 방식이지만, 전통 장단을 사용한다고 해서 그 자체로 모든 문제가 다 끝나는 것은 아니다. 특정 장단안에서도 어떻게 리듬을 하부적 차원에서 운용하는가를 살펴봐야 하는데 가사 붙임새나 프레이즈 구획에 있어 어색한 부분이 쉽게 노출되어 왔다. 결론적으로 전통 판소리를 구성해 온 18-19세기 판소리 명창들의 더늠을 생각해보면, 창작 판소리를 임하는 판소리 전공자들이 작창 부분을 안이하고 상투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아쉬움을 남긴다는 점에서 그 한계에서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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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에 비하여 <지기학제 새판소리: 마당을 나온 암탉>은 판소리와 창극 공존의 모색이란 기치를 내건 공연으로서 작창에 주목해서 눈여겨 볼 만한 공연이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모노드라마와 같은 판소리에서 무대 종합예술인 <창극>으로 가는 중간 단계에 있는 분창(分唱)에 집중한 공연이다. 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을 소리꾼 지기학이 각색하고 작창해서 분창과 함께 약간의 악기를 더해 만든 소리극이라 할 수 있다. 소리에 집중해서 판소리적 완성도를 잃지 않으면서도 두 세명의 소리꾼이 협렵하는 분창을 통해 극적 역동성을 느끼게 해주었다. 나아가 연출을 미니멀하게 간소화하면서 소리 전단력의 효과를 극대화시켰다는 점에서 그동안 지기학이 추구한 작은 창극이 갖는 장점을 잘 보여준 공연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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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창극단의 <이날치전> 역시 소리와 소리를 잘 ‘보여준’ 연출의 중요성을 새삼 확인시켜준 공연이었다. 이 공연에서는 이날치 뿐만 아니라 박만순, 김세종 등 조선 후기 8명창의 눈대목이 두루 불려져 마치 주요 아리아를 모아 부르는 오페라 갈라 콘서트처럼 판소리갈라 콘서트를 실컷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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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치 전 |
특히 전주통인청대사습놀이 장면에서 조선 후기 명창들의 소리 특징과 더늠(명창이 자신만의 창법과 개성으로 새롭게 짜거나 다듬은 대목)을 녹여내어 판소리애호가들에게는 고제 소리를 모처럼 감상하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이를 효과적으로 연출한 정종임 연출의 개입도 판소리 속을 잘 알지 못하는 현대 대중들에게 판소리를 듣는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데 큰 몫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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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더 떼창:문전본풀이>도 판소리뿐만 아니라 제주도 무가를 적극 활용하면서 적절한 편곡과 제창 및 분창을 통해 전통 가창에 충실하면서도 판소리 외 무가와 민요의 다채로운 소리 속을 보여준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이상에서, 작창자들의 소리 공부와 극에 대한 활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몇몇 공연을 통해 먼저 전통 소리의 재료 사용에 능통하는 작창의 필요성을 절감할 수 있었다. 다양한 조와 제를 사용하여 극적 장치를 음악으로 배가시키는 소리극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음악 그 자체에 집중하여, 특히 판소리의 음악적 유산을 풍부하게 계승하는 작창이 잘 된 음악극(창극과 소리극)이 만들어져 창극 및 소리극의 양식적 정체성이 확립되고 이에 점점 더 확장된 형태의 새로운 음악 양식을 실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소영 음악평론가 themove99@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