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 교향악축제 <코리안심포니>
이영조: 여명
슈만: 피아노 협주곡 A단조 op. 54
스크랴빈: 교향곡 2번, op. 29
매년 봄, 예술의 전당은 교향악 축제를 기획해 많은 사람들에게 음악을 선물했다. 일종의 봄의 선물인 셈이다. 올해는 예술의 전당 개관 30주년을 맞아, 축제는 더욱더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했다. 특히 이번 교향악축제에서는 대만국가교향악단이 무대에 올라 선택의 다양화를 꾀했다. 축제는 이제 연례행사 형태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매년 축제의 신선도를 유지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예술의 전당은 올해 역시 다양한 레퍼토리를 통해 축제를 이끌었는데, 그 중심에는 코리안심포니가 있었다. 코리안심포니는 무대에서 보기 쉽지 않은 레퍼토리를 골라, 독특한 음악세계를 관객들에게 선사하였다.
1부에서는 슈만 피아노 협주곡(김태형 협연)이 연주되었다. 김태형은 스케일이 크거나, 다이나믹이 굉장한 부류의 피아니스트는 아니다. 오밀조밀하고 속삭이듯 슈만의 곡을 진행해나갔다. 반복되는 악구에 끝없이 다른 의미를 넣고, 다채로움이라는 속성을 지속적으로 신경 썼다. 페달 역시 극도로 신중해서, 음들을 명확하게 제시했다. 시작과 함께 나오는 클라라 주제도 또박또박 노래를 부르듯 제시했다. 추후 클라라의 주제가 반복 등장할 때마다 멋진 음색으로 주의를 끌었다. 이러한 음색과 터치는 앙코르였던 모차르트 로망스에서도 효과적이었다. 다만 음량이 작아, 슈만 피아노 협주곡 저음부의 일렁이는 음들이 확연히 드러나지 않아 아쉬웠다. 그리고 조심스러운 스타일의 연주 때문인지, 1악장 말미의 슈만만이 보여주는 파토스(pathos)적인 카덴차가 다소 밋밋했다. 트릴 이후, 2박자로 변화하면서 이어지는 급박한 전개 역시 단조로웠다. 세밀한 감성들은 분명 돋보였다. 하지만 심장 떨리는 트릴과 함께 등장하는 클라라 주제라든지, 극적인 하강이라든지, 셋잇단음표로 만들어내는 강렬한 리듬에 익숙한 관객들에겐 다소 심심했을 수 있는 연주였다.
2부에서는 스크리아빈 교향곡 2번이 연주되었다. 실황으로는 극히 드물게 연주되는 곡이다.
복잡하고 모호한 화성을 오가며, 스크리아빈 초기작이 가지는 감성을 뿜어냈다. 특히 안단테 악장에서는 정교한 앙상블로 스크리아빈의 고유 감성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반복되는 주제도 영리하게 갖추어 나가며, 구조적인 모습도 조명하려 노력했다. 이러한 감동의 일등공신은 단연코 코리안심포니 악장의 공이 컸다. 대부분의 패시지에서 흔들림 없이 단원들을 이끌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곡이 어려운 탓인지 금관파트에서 밸런스가 무너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때로는 악기 소리 간 경계가 모호해져, 과연 스크리아빈의 감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의문을 낳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앙코르로 연주된 하차투리안의 'Adagio of Spartacus and phrygia' 는 오늘공연 백미를 장식했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오페라와 발레 반주를 경험한 악단의 저력을 새삼 느꼈다. 갑자기 본편과는 또 다른 악단이 등장했다. 플롯 역시 뚜렷하게 목소리를 내며 극을 이끌어 나갔다. 이 역량은 경영학에서 말하는 핵심역량(Core Competence)이 분명하다. 오늘날까지 코리안심포니의 명성을 유지시켜준 역량이 분명하다.
얼마 전, 정치용 지휘자는 코리안심포니의 상임 지휘자로 취임하면서, 다양한 음악세계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그리고 그 시작은 브루크너 교향곡 8번이었다. 코리안심포니는 이번 교향악 축제 역시 남들이 도전하지 않는, 스크리아빈 영역에 도전하고 탐구하였다. 사실 어떤 단체가 추후 이곡에 다시 도전할지를 기약할 수 없다. 그렇기에 관객들에겐 신선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값진 기회가 되었다. 결국 코리안심포니의 도전적인 선곡은 교향악 축제의 취지와 품격을 한 단계 높이는데 기여했다. 앞으로 코리안심포니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허명현(음악칼럼니스트)
2018 교향악축제 _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4월 1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정치용
협연: 피아노 김태형
연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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