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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파괴, 여전히 진화 중인 플레트네프

기사승인 2019.08.20  15:5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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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하일 플레트네프 피아노 리사이틀>

허명현의 감성회로찾기

예술은 시도로 시작해 최종적으로는 한 예술가의 완전한 언어로 완성된다. 2019년 6월 27일, ‘미하엘 플레트네프 피아노 리사이틀’ 내한공연(예술의전당) 1부를 보며, 아무래도 얼마 전 같은 베토벤 레퍼토리를 연주했던 부흐빈더가 떠올랐다. 부흐빈더의 언어가 완성형에 다가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면, 이 날 플레트네프의 베토벤은 '시도' 그 자체였다.

플레트네프의 베토벤 소나타는 지금껏 들었던 베토벤 소나타 중 가장 낯선 존재였다. 범인(凡人)은 범접할 수도 없는 상상력과 감수성이 드러났고, 순간의 즉흥성까지 빛났다. 또 곡을 조각내고 붙이는 방식은 모두 처음 보는 방식이었지만, 모든 요소들이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만 같았다. 곡이 해체된다는 인상마저 받았는데, 창조적 파괴 과정에 놓인 베토벤 소나타는 그야말로 아름다움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었다. 굉장히 적은 다이나믹으로도 이 곡을 끝까지 끌고 나갈 수 있다는 사실에도 놀랐는데, 호불호가 나뉘는 지점은 아마 이 부분이었을 것이다. 요약하면 결국 천재 예술가의 산물이었다. 다만 플레트네프의 베토벤 이야기 논리는 청중들에게 결코 쉽지 않았다. 무심하게 지나갔던 패시지들이 결국 끝나고 보니 이야기가 되어 버리는 부분들은 보였으나, 의문으로 남은 대목들도 많았다. 타 연주자와 유사했던 건 고작 코드들의 진행뿐이었다. 물론 2악장에서의 놀라운 설득력은 '그래 저렇게 연주해야만 해' 라고 납득하게 했다. 크레셴도보다도 데크레셴도에서 주로 다이나믹이 들어갔는데, 이 지점은 호로비츠가 많이 떠올랐다.

들숨, 날숨조차 예술의 경지로

2부의 리스트 작품들은 온전히 시적인 순간들이었다. 찌메르만이 만들어 낸 아름다움이 인간을 향해 내려왔다면, 플레트네프는 전적으로 뮤즈를 향해 연주하고 있었다. 포르테는 프로그램의 마지막 곡에서나 나올 정도로 절제되어 있었다. 또 화성에 대한 놀라운 감각은 리스트 후기 작품의 감화음들을 제대로 드러냈다. 이미 첫 곡 도입부에서, 음을 4개의 단위로 묶어 화성을 컨트롤하는 모습은 대가의 경지였다. 특히 Harmonies poetiques et religieuses '장례식' 에서 겹점음표와 점음표를 오가며 노래를 하는 장면은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겹점4분음표 뒤의 공백의 시간은 정말 압권이었다. 특급 피아니스트임을 증명하는 건 단 몇 음표만으로 충분했다. 완벽하게 분산 처리되어 들리는 종소리가 나지막하게 울렸고, 숨쉬기 힘든 긴장감과 최상치의 아름다움은 온전히 현장을 찾은 관객들만이 누리는 순간이었다. 이어 랩소디에서는 치프라의 탄력과 박력은 아니지만, 장르 자체의 아름다움을 집요하게 조명했다. 곡의 후반부까지 운율감을 지닌 왼손의 활약으로 랩소디 장르의 품격이 격상되었다. 그밖에 중력이 다르게 적용되는 스케일, 배음의 조탁 등 기술적인 경이로움은 오로지 부차적인 것이었다. 시게루 가와이를 다루는 방식도 주목할 만 했다. 초일류 피아니스트에겐 근육을 통한 동력보다도 역시 생각근육과 청각이 중요했다. 경제적인 움직임만으로도 음색, 투명하게 번져가는 음영, 민첩함 등 시게루 가와이의 장점들을 모조리 꺼내었다. 플레트네프가 다루면 이렇게 훌륭한 피아노구나. 무대 위의 시게루 가와이가 오히려 플레트네프를 선택한 것만 같았다.

앙코르로 이어진 리스트의 ‘사랑의 꿈’과 스카를라티 소나타까지 모두 끝났다. ‘사랑의 꿈’에 가서야 플레트네프는 절제되었던 연주를 놓아주기 시작했다. 결국 첫 곡부터 마지막 곡까지 한편의 드라마였던 것이다. 스카를라티 소나타에서는 성부의 균형감에도 놀랐지만, 더욱 놀라웠던 건 구사했던 트릴이었다. 도무지 피아노를 떠올리며 연주했던 트릴이 아니라 오케스트라의 그것이었다. 역시 플레트네프는 피아니스틱한 그 자체에는 만족하지 못했나 보다.

마지막으로 이 예술가는 지휘가 아니라 피아노를 연주해야 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지휘를 하는 것도 전 인류의 효용 관점에서 타당해 보였다. 플레트네프가 상상하고 있는 음악의 세계는 다른 악기들과의 조합을 통해 분명 확장되기 때문이다. 그가 상상하고 있는 음악세계에 다가가 구경하기 위해서는 그가 지휘봉 또한 들어야 한다는 결론이다.

 

허명현(음악 칼럼니스트)

 

THE MOVE Press@ithemove.com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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