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이른 봄에 벌써
나는 방랑의 길에 올랐다.
청춘의 아름다운 춤들일랑
아버지의 집에 남겨 둔 채로
.........
거대한 희망이 나를 휘몰고,
어두운 믿음의 말이 들린 대문에,
황금빛 대문에 이를 때까지,
그 문 속으로 들어가라고,
그곳에서는 현세적인 것이
거룩하고도 무상하지 않으리라.
산들이 행로를 가로막았고
강들이 발걸음을 얽매었으나,
협곡 위에는 작은 길을 내고
거친 물살 위엔 다리를 놓았다.
......
F. Schiller, ‘순례자 Der Pilgrim’ 중
베토벤의 삶을 떠올리면 굳은 신념과 불굴의 의지로 시련과 역경을 넘어 위대한 걸작을 남긴, 그의 최고의 작품 교향곡 9번 <합창>의 4악장 ‘환희의 송가’에 나오는 쉴러의 시 ’순례자 Der Pilgrim’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청춘의 열정과 행복했던 추억을 뒤로 하고 일찍이 인생의 봄에 방랑길에 올라 이상향을 향해 나아가는 순례자의 모습은 마치 베토벤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고전주의의 균형과 조화를 넘어 영감에 찬 천재성에 열광했던 당시의 ‘질풍노도(Strum und Drang)’ 운동의 이상 그 자체였으니까. 문학과 철학을 탐독해 높은 교양을 갖췄던 베토벤은 쉴러의 예술관에도 깊이 심취했는데, 당시 프리드리히 쉴러(F. Schiller 1759-1805)와 괴테는 이 질풍노도 운동을 이끈 거장이었다. 시 ‘순례자’ 속에서, 고되고 힘든 오랜 방랑의 길에 결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음에도 순례자는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산과 강이 길을 가로막아도 작은 길을 내고 다리를 놓는 행보를 멈추지 않고 계속할 뿐이다. 마치 시지푸스의 신화처럼. 마침내 기쁨에 떨며 부르는 ‘환희의 송가’ 노래 소리에 이르기까지.
지금, 천재지변 같은 질병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세상을 뒤덮어 일상의 삶이 마비되고 있다. 봄이 오고 있음에도 온몸으로 반겨 맞을 수가 없다. 빛나는 생명이 움터 오는 이 봄에 개화하는 꽃나무를 지나는데, 어떤 시인이 목 놓아 부르는 노래가 들려온다. “오오, 목숨이 눈뜨는 삼월이여, 출렁이는 바다에 던지라... 핏빛 동백으로 다시 살아나게 하라. 다시 피게 하라”고.
봄이 오고 있다. 다시 삶의 교향악이 울려온다.
Editor in Chief 임효정
임효정 기자 Press@ithemov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