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쌈의 시골마을 ‘살나무 아래에서 페스티벌’
자연 속에서 예술과 삶(생활)을 실천하다
살 나무 아래서 펼쳐지는 축제 (Under The Sal Tree Festival)는 인도 아쌈(ASSAM)지역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열린다. 이 축제가 열리는 반당두파 (Badungduppa) 마을은 아쌈 지역의 중심도시인 구화아티(Guwahati)에서도 2시간 이상 차로 이동을 해야 하는 아주 작은 시골마을이다.
살 나무(Sal Tree)는 곧게 올라가는 활엽수로, 나무가 자라면 위로는 나뭇잎이 하늘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무성하지만 나무 아래쪽엔 비교적 넒은 공간이 생긴다. 그래서 살(Sal)나무 숲에 들어서면 일종의 동굴 효과가 나서 작은 소리도 아주 잘 전달된다. 더군다나 동굴처럼 공명이 많은 것도 아니어서 대사를 전달하는데 최적의 환경이 된다. 그래서 이 축제에서는 전기를 전혀 쓰지 않는다.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조명이나 음향이 없이, 그야말로 친환경 축제가 펼쳐진다.
살 나무(Sal Tree) 숲에 대나무로 객석을 만들어서 관객을 맞는데, 공연마다 1600석의 객석이 가득 찬다. 그래서 축제에 참여하는 관객들을 위해, 축제기간 동안 기차도 특별히 운행된다. 조명이 없으니까 공연은 낮에 한다. 이곳은 오후 5시면 해가 지기 때문에 매일 아침 10시와 오후 2시30분에 공연을 한다.
일반 관객들은 공연이 끝나면서 배우나 연출과 토론을 하고 사진을 찍고 돌아간다. 하지만 공연 참가자들은 여기서 일정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간식을 먹고 저녁 7시부터 약 2시간 동안 치열한 토론의 장이 기다리고 있다. 이 토론에는 축제에 참여한 예술가들은 물론이고 뉴델리나 캘커타 등 대도시에서 온 연출가나 평론가 저널리스트 등 전문가들이 참여한다.
이들 가운데는 축제 예술감독이 있어, 여기서 작품을 섭외하기도 한다. 이밖에도 구화아티(Guwahati)에서 온 자원봉사자들과 마을 사람들이 참여하는데, 이 자원봉사자들은 대부분이 예술전공자들이다. 그밖에도 프랑스와 독일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들이 참여하였다. 프랑스에서 온 루시라는 학생은 3년째 계속 이 축제에 참여해서 토론을 한다고 했다.
보통은 공연이 끝나면 관객들이 배우들과 토론을 하고 사진을 찍지만,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낀 작품은 1600명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이들은 일반 관객들의 맹목적인 호의를 갖고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해외 작품이라고 호의를 갖는 것도 아니다.
이는 토론 시간에 더욱 정확하게 드러난다. 예술가들에게 매우 호의적인 토론이 있는가 하면, 관객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공연들은 금방이라도 싸울 정도로 언성을 높이며 토론을 한다. 어떤 경우는 ‘가치 없음’으로 한 마디 평을 않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 극단의 <까만닭>은 첫 날 공연 했다. 관객들이 무대에 올라와 사진을 찍고 좀처럼 자리를 뜨지 않았다. 토론시간에도 작품을 만드는 과정과 일반적인 오브제극과 달리 왜 신체를 활용하는 지 등 다양한 질문을 해왔다. 특히 민들레는 전통을 바탕으로 공연한다고 들었는데, 작품 속에 전통이 어떻게 접목되어 있는 지에 대해 질문하고 답을 하였다. 그리고 직접 그 과정을 몸으로 보여주는 시간까지 가졌다.
실제 인도에 있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부패문제, 여성 문제, 도시 생태문제 등 다양한 사회적인 문제를 담아내고 있었다.
<불(Nian)>은 오리사(Odissa)지역의 나타야 첸타나(Natya Chetana)라는 극단의 작품이다. 한마디로 촌스럽다. 의상도 그렇고 소품도, 장치도 그렇다. 배우들의 구성도 잘 맞지 않았다. 엄마 역을 맡은 배우가 가장 젊은 배우여서 금방 신뢰를 잃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극단을 이끄는 스보드(Subodh Patnaik)는 진정성을 갖고 ‘사회 문제를 연극으로 만드는’ 사람이다. 드러난 것은 촌스럽지만, 그 안에 내재된 힘은 실로 강했다. 극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한 소녀가 남자를 만나 결혼한다. 그런데 그 사내가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산적들을 소탕하던 정부군에게 죽고 만다. 정부군은 남편 시체에 산적 모자를 씌우고 사진을 찍는다. 졸지에 과부가 된 처녀는 친정으로 돌아와 어려운 생활을 한다. 그런데 도시에서 온 멋진 사내가 청혼을 하는 것이 아닌가. 처녀는 그 사내를 쫓아 도시로 간다. 그런데 사내는 도시의 악당이었다. 여자를 팔아먹으려 한다. 여자는 도망을 나와 할 수 없이 산적이 된다. 인도 정부군은 도시 사내와 한 편이 되어 산적들을 소탕하려 산에 불을 지른다.”
실제 인도에 있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부패문제, 여성 문제, 도시 생태문제 등 다양한 사회적인 문제를 담아내고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한 시간 가까이 관객들과 대화가 이뤄졌고 저녁 토론 시간에서도 칭찬이 대단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지역 신문 1면에 공연이 실렸다. 아무리 지역 신문이라 하더라도 1면에 연극 작품을 실을 수 있을까, 실로 대단한 경험이었다.
또, 이 축제를 만들고 있는 랍하(Rabha) 극단의 <맥베드>를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아쌈 지역 촌동네에서 공연하는 단체지만, 이미 세익스피어의 맥베드는 관심이 없다. 이들은 “맥베드”와 “레이디맥베드”라는 작품을 바탕으로 이들이 생각하는 <맥베드>를 만들었다. 이것을 인도 촌 동네 지역 주민들이 감상을 하다니! 의심이 갔다.
하지만 공연이 끝나고 지역 청년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이들이 작품을 상당 부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새삼 인도의 힘을 더욱 크게 느끼게 되었다. 더욱 대단한 것은 이 극단의 배우들이다. 이들은 공연이 끝나고는 축제의 주인이 되어 손님을 맞고 식사를 대접하고 무대를 만드는 일을 직접 하였다.
역시 이들도 예술로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예술을 하면서 삶을 영위한다는 것은 동서양 모든 예술가의 숙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이 택한 것은 예술과 삶(생활)을 동시에 실천하는 것이다. 이들은 노동을 하면서 예술을 한다는 신념을 실천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연 속에서 축제를 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송인현
극단 민들레 대표, 연출가로 전통을 바탕으로 창작을 하며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가는 작품을 만들고 있다. 봉산탈춤 이수자로 우리춤, 우리가락을 공연에 자연스레 녹여내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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