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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리뷰] 국립오페라단 <처용> 빈 무지크페어라인(황금홀)에서 화려한 피날레 장식

기사승인 2024.06.16  12:4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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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오페라 미래 방향 제시한 3개 국립예술단체 유럽 투어

국립오페라단 <처용>, 빈필하모니 무지크페어라인 황금홀 (Goldener Saal vom Wiener Musikverein) 공연.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국립합창단,

매년 빈 필하모니 신년음악회가 열리는 오스트리아의 빈 무지크페어라인 황금 홀(Goldener Saal vom Wiener Musikverein)은 클래식 분야에서 선망의 공연장이다. 1870년에 신고전주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1700여 석의 이 홀은 세계적인 음향 수준을 자랑하는 곳이어서 연주자에게도, 애호가에게도 꿈의 무대이며 객석이다.

지난 13일 저녁, 빈(Wien)을 비롯한 오스트리아 거주 한국 교민들과 현지인 관객들로 가득 찬 이 공연장에서 국립오페라단의 <처용> 유럽 투어 마지막 공연이 열렸다. 파리올림픽 문화행사의 일환으로 국립오페라단이 제작한 이영조의 오페라 <처용>은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국립합창단 단원들과 출연진, 제작진을 포함한 150여 명의 공연단을 꾸려 6월 9일 파리 오페라 코미크에서 오페라로, 6월 11일 베를린 필하모니에서 콘서트 형식으로 이미 공연을 가졌다. 그리고 마침내 빈에서 콘서트 형식으로 순회공연의 화려한 마무리를 장식했다.

관객들의 호응

이날 객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현지 외국인 관객들은 한국 고대설화를 기반으로 한 이 현대적인 비극에 공연시간 90분 내내 높은 몰입도로 집중했다.

물질적 욕망으로 타락한 신라의 멸망을 옥황상제가 예고하자 그의 아들 처용은 사람들을 구하고자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고 지상으로 내려온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사랑에 빠진 거리의 여자 가실도 신라도 구하지 못한다. 바그너의 라이트모티프 기법을 비롯해 다채로운 서양음악 어법을 사용했으나 국악 장단과 독특한 리듬을 가미한 이영조의 음악은 한국인 관객들에게는 고향의 편안함을 느끼게 했고 외국인 관객들에게는 경이로운 신세계로 다가온 듯했다.

 

우리 고유의 음악적 전통과 문학 서사를 담은 오페라가 유서 깊은 유럽의 공연장 관객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하는 걱정과 기대 속에 긴장했던 파리 첫 공연과는 달리, 빈 황금 홀 무대에 선 솔리스트들과 합창단 및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자신감 넘치는 연주를 선보였다. 흡음의 정도가 비교적 큰 파리 공연장에 비해 유난히 뛰어난 이 공연장의 공명을 전날 리허설 때 이미 확인한 뒤여서 자신감이 더욱 커진 듯했다.

 

처용_노승의 노래_빈필하모니 황금홀 공연

같은 성악가들의 노래였지만 객석에 전달되는 소리는 파리와 비교해 확연히 달랐다. 옥황상제 역의 베이스 권영명의 저음은 이 공연장에서 훨씬 깊이와 윤기를 더했고, 처용 역의 테너 김성현의 명징하고 힘찬 고음 역시 더욱 아름답게 울렸다.

빛의 속도로 표정과 음색을 바꾸며 악역의 진수를 보여준 역신 역의 바리톤 공병우, 배역 중 가장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내면을 지닌 캐릭터를 탁월하게 표현한 가실 역의 소프라노 윤정난의 목소리 역시 더욱 생생하게 빛났다.

국립합창단의 여성합창은 아련히 사라지며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했고, 최고의 관심을 모은 ‘경: 승려들의 합창’에서 노승 역의 유지훈을 비롯한 남성합창단원들의 압도적인 에너지는 서양의 관객들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부상투혼으로 끝까지 공연을 완주한 지휘자 홍석원, 그리고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는 이날 더욱 여유 있고 박진감 넘치는 연주를 들려주었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피트 안에서 연주하고 성악 솔리스트들과 합창단이 무대 전체를 사용해 연기했던 파리 공연,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무대 위에서 연주했으나 솔리스트들이 무대 앞과 뒤, 옆으로 움직이며 동선을 크게 사용할 수 있었던 베를린 필하모니 공연과는 달리 이번 공연에서는 오케스트라 앞쪽 공간만 무대로 활용할 수 있었다. 

 

처용_가실의 자결 장면_ 빈필하모니 황금홀 공연

이에 맞춰 연출가 이지나는 여주인공 가실이 자결하는 마지막 장면 등을 상징적으로 처리했다. 가실은 앞선 공연에서처럼 사실적인 자결의 연기를 보여주는 대신, 칼을 목에 대고 긋는 동작을 보인 뒤 선 채로 고개를 숙임으로써 죽음을 표현했다. 그럼에도 이 단순하고 상징적인 죽음의 표현은 마음을 깊게 울렸다.

 

공연이 끝난 뒤 스스로 ‘빈 토박이’라고 하는 나이 지긋한 오스트리아인 부부에게 물었다. 상징적이고 압축적인 이번 무대에서 ‘처용으로 변신해 가실을 범하는 역신’ 등의 설정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서였다. 답변은 의외였다.

“저희는 이 공연을 보기 위해 공부 많이 하고 왔어요. 내용을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장면도 당연히 잘 이해할 수 있었죠.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이들은 독일어 자막(김기민 번역)이 이해하기 쉽게 번역되어 관극이 더욱 수월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국어 공부하는 외국인들, 

"이번 오페라 공연에서 저희가 아는 한국어 단어와 표현들을 듣게 되어 아주 즐거웠어요.”

 

양악기들과 함께 꽹가리와 목탁이 어울려 만들어내는 음악은 생소하지 않았을까?

질문을 받은 현지 관객 대부분은 그런 이질적인 요소의 혼합 때문에 음악이 더욱 매혹적이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고 답했다. 특히 20대, 30대로 보이는 젊은 오스트리아 여성관객들이 다수 눈에 띄었는데 파리, 베를린에서와 마찬가지로 빈에서도 이들 대부분은 한국 드라마와 대중가요 또는 가곡에 매료되어 공연장을 찾아온 관객들이었다.

스스로 서른 살, 서른일곱 살이라고 밝힌 니콜리나와 카트리나는 내용이 어렵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한국 드라마의 기본적인 구조와 별 차이가 없어서 쉽게 이해할 수 있었어요. 지금 저희들은 드라마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고 있는데, 이번 오페라 공연에서 저희가 아는 한국어 단어와 표현들을 듣게 되어 아주 즐거웠어요.”라고 답했다.

그러나 여주인공의 희생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표현하는 여성관객들도 있었다. “한때 타락한 삶을 살았던 여성은 결말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전통적인 할리우드 서사와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해요. 시대가 달라졌으니 여주인공을 표현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합니다.”

작곡가 이영조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photo by _이용숙,  

 

유럽 현지 관객들의 반응은

 한국 오페라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한 셈이다

                                                            "

 

이와 같은 유럽 현지 관객들의 반응은 한국 오페라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한 셈이다. 한국의 드라마, 가곡, 가요에 매료되어 그 텍스트를 이해하려고 한국어를 배우는 동서양의 외국인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 이즈음, 한국의 전통과 현대의 삶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콘텐츠를 설득력 있고 수준 높게 제작한다면 그 예술어법이 외국 관객들에게 다소 생소하다 하더라도 충분히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해외 젊은 여성 관객층의 관심 분야를 고려한 콘텐츠의 개발도 생각해볼 만하다.

 

이번 투어에 참여한 국립예술단체 단원들과 출연진, 제작진은 파리-베를린-빈 공연의 연이은 성공, 현지인들의 뜨거운 반응과 기립박수에 무척 흥분하고 고무되어 있었고, 작곡가 이영조는 최선을 다해 자신의 예술작품을 재현한 이들 모두에게 깊은 감사를 표했다. 연주자들은 ‘처용’을 오페라 콘체르탄테 형식이 아닌전막 공연으로 국내 오페라극장에서 재공연하고 싶다는 의욕도 피력했다. 우리의 음악과 공연 수준에 대한 서양음악 종주국에서의 인정은 예술가들의 자긍심을 높여 더욱 뛰어난 콘텐츠 제작과 연주를 가능하게 할 것으로 보인다.

 

(음악평론가 이용숙/연합뉴스 객원기자 rosina0314@naver.com)

사진 제공_국립오페라단

 

이용숙 음악평론가 themove99@daum.net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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