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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세계양금축제 in 서울>이 개최된다. 세계에서 양금을 하는 연주가들이 서울에 모인다. 11월 3일 오프닝콘서트를 시작으로, 4일부터 8일까지 닷새간 서울 강북문화예술회관은 세계 각국의 양금 소리로 가득 채워진다! 이것이 정녕 사실이나, 정년 믿기지 않는 이 기분을 뭐라 말할 수 있을까.
한국양금협회, <세계양금축제>를 만들어내다!
이번 축제가 가능하게 된 건 한국양금협회(korea Yanggeum Association)가 존재하기에 가능했다. 2016년에 창립되었고, 2023년에 서울시는 전문예술단체로서 한국양금협회를 지정했다. 2022년에는 한국양금축제를 개최했고, 2023년엔 아시아양금축제를 개최하였다. 이렇게 성장한 한국양금협회가 드디어 제 17회 세계양금축제를 주최 주관을 하면서, 제 1회 세계양금콩클이라는 경연대회까지 열게 된 거다. 지난 6월 20일 예선을 거쳤고, 11월 8일 본선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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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화 한국양금협회장 |
10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다. ‘한국의 양금’은 ‘세계의 양금’ 속에서 당당하게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런 성장의 배경에 윤은화가 있다. 중국 연변에서 양금을 수학했고 모국에 와서 양금 보급에 앞장섰다. ‘동양고주파’라는 그룹을 통해서 양금의 특징과 매력을 널리 알렸다. 2018년에 결성된 3인조 밴드 동양고주파는 대한민국의 프로그래시브 록 밴드로서 존재감이 있다. 사실 국악을 전공한 사람들의 고정관념으로는, 락밴드 사운드 속에서 양금이 강렬하게 자기 목소리를 낸다는 걸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 윤은화의 남다름이 있다.
"국악과는 있어도, 양금 전공은 없었다."
지난 20세기 후반, 대한민국은 대학의 국악과를 통해서 국악이 전반적으로 크게 발전했다. 그러나 양금은 그렇지 못했다. 대학의 국악과에 양금 전공자는 없었고, 전통음악 중 정악이나, 창작곡을 연주할 때가 가끔 쓰이는 악기였다. 그 시절 내 기억을 더듬는다면, 국악과의 악기실에 보관된 양금의 뚜껑엔 언제나 뽀얗게 먼지가 쌓여 있었다. 이런 악기가 봄과 가을 정기연주회에서 2차례 정도 햇빛을 본 셈이다.
지난 20세기 후반, 대한민국은 확실하게 ‘양금 후진국’이었다는 사실을 환기한다면, 이런 축제를 통해서 대한민국이 ‘양금 선진국’으로 도약한다는 게 얼마나 의미가 있는가를 새삼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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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비유하겠다. 이번 <세계양금축제 in 서울>은 지난 1988년의 <서울올림픽>과 같은 것이라고. 당시 서울올림픽 당시 메인 표어가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였다. 서울올림픽이 열린 당시의 서울은 세계가 주목하는 도시는 아니었다.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서울이 국제도시로 부각하는 큰 계기가 되었다. '2024 세계 최고 도시들(World’s Best Cities Report)'에서 서울이 10위에 올랐음을 외국의 경제 전문지에 기사를 통해서도 확인하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번 세계양금축제를 계기로 한국의 양금이 세계에 널리 알려짐과 동시에, 양금을 바탕으로 한 한국음악의 위상이 더 높아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박지원, 양금에 관심을 둔 실학자
2002년 월드컵의 구호이기도 했던 ‘꿈이 이루어진다’는 슬로건이 또한 생각나는 지금, 나는 이 땅의 양금의 역사를 되짚어 보게 된다. 구라철사금(歐羅鐵絲琴)이라고 불린 양금이 우리나라에 전래 된 것은 영조 무렵. 연암 박지원( 朴趾源, 1737~ 1805)이 양금에 관한 최초의 기록을 남겼다.
“이 악기가 우리나라에 나타나기는 어느 때인지 모르나, 토조(土調)로 해곡(解曲)하기는 홍덕보 (洪德保)로부터 기록한다”는 글이 있다. 홍대용(洪大容, 1731~ 1783)의 자는 덕보(德保), 호는 담헌(湛軒). 조선 후기의 문신, 실학자이자 과학 사상가이다.
당시 실학자의 관심 대상 악기가 왜 유독 양금(구라철사금)이었을까. 이에 관해서는 상상력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가야금과 거문고와 다르게, 철선으로 된 것도 관심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양금은 조율에 의해서 매우 정확한 음정을 만드는 악기인데, 이런 것이 특히 과학적 사고에 근거한 실학자들에게는 더욱 매력적인 악기로 다가가지 않았나 추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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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금(구리철사금) |
모두 양금을 다뤘던 시대가 있었다
20세기 후반 대학의 국악과에선 양금과 거리가 멀었지만, 20세기 전반 예인을 양성하는 권번(券番)에선 양금이 모두가 다루는 기본적인 악기였다. 양금은 정확한 음고가 있기에 이렇게 양금을 치면서 풍류의 흐름을 터득한 것이다. 양금으로 정확한 음고를 익힌 후에, 거문고와 가야금 등을 익히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악(朝鮮樂)의 맥을 잇는 역할을 한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에는 양금전공은 없었다. 피리, 대금, 가야금, 거문고, 해금의 다섯 전공이었다. 그러나 아악부의 아악생이라면 모두 양금을 다룰 줄 알았다. 일제강점기의 전통음악교육이 그러했다. 양금이 우리에게서 멀어진 건, 대학에서 국악교육을 시작한 때부터였다. 이른바 ‘가거대피리’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지난 20세기 대한민국 양금사(洋琴史)에서 매우 중요한 사실을 여기에 꼭 기록해야 한다. 1990년대에 국악계에서 일어난 양금 부흥의 노력과 성과이다. 생전 김천흥(金千興, 1909〜2007)은 ‘양금연구회’를 만들어서 양금 보급에 앞장섰다. 지금은 이런 양금은 ‘전통 양금’이라하고, 양금이라 하면 윤은화 등이 연주하는 양금을 말한다. 그러나 앞으로 전통양금에 관해서도 관심은 지속해야 한다. 양금은 현란한 기교만으로 표현되는 악기는 아니다. 금속성의 소리로 전제로 해서 ‘절제미를 생명으로 하는 악기가 양금’, 곧 전통양금이라는 걸 늘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조선후기 실학자(북학파)들이 양금에 관심을 둔 이유는 무엇이며, 일제강점기 조선의 풍류객들이 양금이라는 악기를 편성했던 이유를 명심해야 한다.
대한민국 국악관현악 등에서 양금이 새로운 관심의 대상이 된 건 2000년대 초반이다. 20세기의 악기라 가거대피해(가야금 거문고 대금 해금 피리)의 다섯 악기에 아양소생태(아쟁 양금 소금 생황 태평소)라는 다섯 악기가 만나면서 한국음악은 더욱 풍성해졌다.
박지원과 홍대용 vs. 윤은화와 이영찬
2024 세계양금축제 서울 추진위원의 핵심적 주체는 윤은화와 이영찬. 서울특별시 문화도시위원회 위원이자, 서울특별시 축제위원회 위원이기도 한 이영찬은 특히 해외에서 한국전통음악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알리는 큰 역할을 해왔다. 열로밤의 총괄 프로듀서 이영찬이 운영감독을 맡고, ‘대한민국 양금의 21세기 중시조(中始祖)‘라 할 윤은화가 전체 예술감독을 맡은 축제다.
<세계양금축제 in 서울>을 탄생시킨 윤은화와 이영찬이란 두 사람의 만남을 상기하면서, 오래전 양금을 앞에 놓고 밤이 새도록 대화를 나누었을 연암 박지원과 담헌 홍대용이 겹친다. 18세기 후반, 이 땅에 양금을 애정(愛情)한 박지원과 홍대용이 있었다면, 2024년 서울엔 이영찬과 윤은화가 있다. 그 시절 두 사람(박지원, 홍대용)이 있었기에 양금이 주목을 받는 계기가 되었듯이, 이제 이 시대엔 앞의 두 사람과 함께 또 많은 사람이 힘을 보태서 양금을 21세기 대한민국 악기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양금은 나라와 민족마다 불리는 이름이 달랐다. 이번 축제에서는 우리나라의 명칭인 '양금(Yanggeum)'이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하니 더욱 뿌듯하다.
윤중강(음악평론가)
윤중강 음악평론가 themove99@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