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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근의 독일에서 날아온 음악편지⑤ _음악은 살아남기 위한 존재

기사승인 2017.11.14  03:2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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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5번 Dmitri Shostakovich : Symphony No. 15 in A major, Op. 141

베를린 플렌츠라우어 베르크 카페

Dmitri Shostakovich : Symphony No. 15 in A major, Op. 141

I. Allegretto II. Adagio. Largo. Adagio. Largo 07:03 III. Allegretto 21:02 IV. Adagio. All...

 

어린 시절부터 러시아 혁명과 전쟁, 스탈린 공포정치로부터 목숨이 위태로운 절박한 상황을 견뎌내 온 그에게 음악은 살아남기 위한 존재였으며 삶의 유일한 희망이었다고 생각한다.

                                                                   ”

 

포츠담 상수시 궁전 정원

 

11월은 독일에서도 일 년 중에 가장 우울한 달이다. 또한 추운 날씨에 습해진 공기 때문에 건강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하는 시기이다. 하지만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기에 변화에 순응할 수밖에 없듯이 이시기에 세상을 떠나는 분들이 많이 있다.

독일 개신교에서는 대강절이 시작되기 한주전의 일요일, 보통 11월의 마지막 일요일을 'Totensonntag 망자의 일요일' 또는 'Ewigkeitssonntag 영원한 일요일'로 정하고 레퀴엠을 많이 연주한다. 음악회에서도 비교적 무거운 작품들이나 종교적인 작품이 많이 연주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모차르트, 베르디의 진혼곡이 주로 연주되고 브루크너, 말러의 큰 작품들도 어렵지 않게 프로그램에서 찾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 시기에 연주되는 위의 작곡가들의 작품에서 무언가 더욱 정숙하고 숙연한 분위기에서 영혼까지 울리는 깊은 감성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오페라의 많은 작품들이 어떠한 형태로든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프랑크푸르트 극장 재직시절, 돌아오는 시즌에 유태인 체코 작곡가 빅토 울만의 <아틀란티스의 황제>를 지휘하라고 연락이 왔다. 제목도 들어보지 못한 오페라여서 스코어를 주문해 읽고 작곡가에 대해 찾아보니 그는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숨을 거뒀다고 한다. 더욱이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 작품이 유태인들을 아우슈비츠로 보내기 전에 결집시켰던 테레지안슈타트에서 작곡이 되었고, 공연 하루 전 총연습을 마친 뒤 출연자 모두 아우슈비츠 가스실로 보내졌다는 것이었다.

이 오페라의 내용은 죽음이란 결코 두려워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현재의 삶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구원의 도구라고 표현하고 있다. 시대를 잘못 타고난 유태인들이 그들의 운명을 이미 감지하고 죽음의 문턱을 어떻게 넘을 것인가 고민해야하는 것이 삶의 과제가 되었던 실존적인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죽음을 의인화해서 다룬 한 오페라를 통해 인간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가치 있는 일은 내손에 가지고 있는 한줌의 생명이 가장 귀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느낀 적이 있다.

 

포츠담 상수시 궁전박물관

90년대 초반 유학초기에 슈투트가르트 방송교향악단 정기연주회에서 쿠르트 잔데를링의 지휘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5번’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내가 아는 쇼스타코비치 교향곡은 유명한 5번밖에 없었고, 쇼스타코비치가 교향곡을 15개나 작곡했다는 것이 어떤 차원인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모든 교향곡은 베에토벤처럼 9번까지만 알고 있던 시기라서 15번째 교향곡이면 엄청난 규모의 대작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쇼스타코비치와 절친 이었다는 쿠르트 잔데를링 이라는 전설적인 동독지휘자의 실연을 볼 수 있다는 설렘으로 일찌감치 공연직전에 학생들에게 저렴하게 파는 티켓 줄에 섰다. 슈투트가르트 방송교향악단 정기공연도 같은 곡목으로 3일을 연주하기에 그 당시만 해도 부지런하면 얼마든지 좋은 연주회를 볼 수가 있었다. 웅장하리라고 기대하고 들은 쇼스타코비치 15번 교향곡은 오히려 하나의 ‘유령 교향곡’처럼 들렸다. 스케치를 한 듯이 여러 모티브들이 휙휙 지나가는데 불쑥 롯시니 빌헬름 텔의 동기도 튀어나와 전쟁유령들이 말을 타고 지나가는 듯 했다. 숨죽이며 듣던 청중들도 이 부분에서는 웅성대기도 했다. 긴 두 번째 악장은 폐허에서 울리는 장송행진곡과 같았고, 마지막 악장에서는 바그너의 죽음의 통고, 트리스탄, 말러 교향곡 4번을 연상케 하는 모티브들이 앙상하게 남은 겨울나무에 바람처럼 스쳐지나갔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첼레스타, 실로폰 그리고 여러 타악기가 조합되어 피아니시모로 끝나는 마지막 부분이었다. 4차원의 세계로 사라지는 듯하다 여태껏 들어보지 못한 신비로운 음향이었다. 어떻게 곡이 종결되었는지 감지하지 못한 채 오랜 동안 청중들은 박수를 치지 않았고 정적과 침묵이 공연장에 흘렀다. 후에 알게 되었지만 쇼스타코비치는 그의 교향곡 14번에 죽음에 관해 깊은 사색을 담았고, 오랜 동안 병 치료 속에서 마지막으로 교향곡 15번을 구상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교향곡에서는 쇼스타코비치의 일생이 스쳐지나간다고 나는 느낀다. 어린 시절부터 러시아 혁명과 전쟁, 스탈린 공포정치로부터 목숨이 위태로운 절박한 상황을 견뎌내 온 그에게 음악은 살아남기 위한 존재였으며 삶의 유일한 희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의 마지막 교향곡에서 별로 좋아하지 않던 바그너의 유도동기들과 12음렬을 사용한 것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이 작품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바그너에 대한 거부감과 12음 기법에 대한 냉소적인 그의 입장을 나름대로 화해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았다. 비록 그 후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고민과 음악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남겨주고 있다.

많은 대가들의 음악이 아직도 살아있는 우리들의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며 영혼을 위로하듯이 또 우리 후대들에게도 전해질것이다. 육체의 존재만이 결코 삶의 전부가 아닌, 음악과 예술 속에서 죽음도 삶의 하나의 일부분이 된다고 나는 믿는다. 11월은 결코 우울한 계절이 아니라 우리에게 좀 더 깊은 사색과 삶의 의미를 느끼게 해주는 소중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윤호근 (conductor)

 

포츠담 상수시 궁전박물관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5번 모스크바 방송 교향악단/키릴 콘드라신

https://www.youtube.com/watch?v=BJLfgkEXQkA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5번 마린스키 극장 오케스트라/게르기에프

https://www.youtube.com/watch?v=nyw3knBuLRk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5번 실내악 편성 편곡

https://www.youtube.com/watch?v=BJLfgkEXQkA&feature=youtu.be

 

 

 

 

 

 

THE MOVE Press@ithemove.com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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