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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慰勞)의 고전(古典)이 춤추다

기사승인 2019.11.21  01:2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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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도립국악단 정기공연 춤·극 <심청>

춤극 <심청>

고전 <심청(沈淸)>의 무대화는 현재진행형이다. 한국, 한국인의 정서와 호흡하는 영원한 고전(古典)이다. 변주(變奏) 미학의 정점을 찍는 이유다. 판소리를 필두로 창극, 발레 등 다양한 장르로 탄생했다. 2019년 10월 11~12일, 남도소리울림터에서의 이번 전남도립국악단 정기공연 춤·극 <심청>은 기존 작품과 차이점이 있다. 고전 ‘심청’의 내재성은 충분히 살리되 이를 해석하고, 표현하는 기법 등은 컨템포러리 속성과 스타일을 적극 수용했다는 점이다. 사회자가 언급한 것처럼 1986년 창단된 전남도립국악단 33년만에 처음으로 무용극 ‘춤·극’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기존은 창과 소리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단순히 시도해서 그친 것이라 아니라 이 작품이 남긴 확장성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국립무용단 훈련장 정길만 연출·안무의 예술철학과 지성적 안무 포맷은 이번 작품에서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심청 죽음에 대한 고민은 심청(정운선)의 인간적 고뇌에 연결되고, 심봉사(최윤석)이자 딸을 잃은 현대의 아버지인 심작가는 생을 말한다. 심청의 죽음을 그대로 두지 않고, 적극적으로 위로하고 풀어주는 ‘위로(慰勞)의 고전(古典)’이다. 치밀한 움직임과 극적 연기는 탄탄한 텍스트와 각 장면마다 풍요롭게 배치된 음악 속에 빛났다.

1장 죽음으로 가는 길. 외롭고 쓸쓸하다. 고향산천과 정든 친구, 동네사람들, 무엇보다 사랑하는 아비를 뒤로하고 영영 돌아 올 수 없는 길을 가는 심청의 마음을 누가 알까? “청아”. 사랑하는 친구를 위해 목놓아 부른다. 절절한 구음, 현대성 강한 음악은 이별의 슬픔을 배가시킨다. 행선날 비장함이 심청과 코러스 대비를 통해 극적으로 표출된다. 죽음을 맞은 심청의 지난날이 2장에서 회상으로 그려진다. 가상공간에서 죽음을 맞이한 심청의 무서움은 낮고 빠른 코러스 대사를 통해 전율을 느끼게 한다. 그리움, 무서움, 지난 사연들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대금 독주, 심청 솔로춤, 심청과 코러스의 2인무, 3인무, 4인무가 회상의 순도와 진폭을 높인다. 특히 사랑하고픈 여자(심청)의 마음을 남녀 2인무를 통해 서정적으로 담아냈다. 아름다운 음악속 듀엣은 밝음이 오히려 슬픔을 더하는 효과를 냈다. 감동을 증폭시킨다. 회상 후 3장은 심작가 서재로 공간 배경이 전환된다. 이 작품이 기존 ‘심청’과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창발성이 도드라진다. 심작가 딸은 사고로 죽었다. 죽은 딸을 그리워하고, 딸과의 추억과 기억의 장소인 서재는 심작가에겐 특별하다. 삶과 죽음이 교차되는 공간이다. 내면 속 간절함으로 탄생된 곽씨부인(박현미)은 심작가 주변에서 맴돈다. 심작가는 내면의 대화를 나눈다. 고전 ‘심청’에선 뺑덕어미는 심봉사를 속여 그를 이용하지만 이 작품에선 고통속에 파묻혀 살아가는 심작가를 위로하는 교양과 미덕을 갖춘 순수한 여자로서 캐릭터가 대비된다.

 

그리움의 완성은 ‘만남’. 간절한 만남을 원하면 원할수록 그에따른 고통은 수반되는 법이다. 군무진이 심작가의 험난한 길을 거칠지만 밀도있게 담아낸다. 꿈속에라도 만나고픈 절절한 마음을 담은 4장은 주제곡 ‘네 눈은 너의 눈’에서 만개한다. 무대 사선으로 심청이 멀리서 걸어 나올 때 들려오는 이 노래는 작품 백미 중 하나다. 심작가의 테마곡 노래와 심청의 솔로춤은 감정선을 극도로 올리기엔 충분했다. “우리 딸이 웃고 있어.” 딸의 웃음에 모든 걸 용서받은 심작가. 갇힌 공간인 서재에서 밖으로 나온다. 만남의 길을 노래한다. 이별의 슬픔을 뒤로한다. 동행이란 이름이 무대에서 길을 낸다. 작가의 본분인 글쓰기. 글을 쓰던 원고지와 펜을 챙겨 당당히 걷는다. 무대 뒤 심청과 곽씨부인을 바라보는 심작가의 눈엔 새로운 눈이 비친다. 희망이자 삶이다. 치유과 상생, 희망의 메시지를 현대적으로 길어올린 춤·극 <심청>은 무용극답게 심청 솔로와 코러스인 군무와의 다양한 조합과 안무 구도를 통해 등장인물의 심정과 심리를 고도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춤극이 지역에서 자주 올려지고, 투어공연도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좋은 작품은 공유의 미덕을 가져야 한다.

 

 

 

이주영(공연칼럼니스트)

고려대 문학박사, 시인, 대본작가, 공연칼럼니스트

前) (사)조승미발레단 기획홍보실장, (재)세종문화회관 기획, 국립극장 기획위원, (재)인천문화재단 본부장

 

THE MOVE Press@ithem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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