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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_이소영] 다시, 국악관현악의 정체성을 묻는다_'서울시국악관현악단 60주년-헤리티지'

기사승인 2025.04.26  20:3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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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국악관현악단 60주년 기념 연주회 _헤리티지_2025.4.18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난 4월 18일, ‘헤리티지(heritage)’라는 제목으로 서울시국악관현악단 60주년 기념 공연이 성황리에 열렸다. 공연 전후,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의 로비와 객석에 청중을 가득 채우고 리셉션에는 국악계의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였고 무대에는 OB단원들이 올라와 함께 협연을 하는 등 국악관현악단의 종주다운 기념 공연이었다.

이날 공연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뉘어 전통과 미래를 아우르는 구성으로 진행됐다. 1부에서는 김영동의 <단군신화>와 황병기의 <침향무> 등 전통적 색채가 강한 곡들이, 2부에서는 뮤지컬 배우 카이의 협연과 위촉 신작(최지혜, 이지수 작곡)이 연주됐다. 1부는 과거의 정체성과 역사성을 강조했고, 2부는 대중성과 미래지향적 시도를 보여주려 했다.

 

가야금 협연_김일륜

공연의 구성은 크게 2부로 이루어졌으나 내적 구성은 3부의 형식으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담아내고 있다. 1부 김영동과 황병기의 작품은 과거를 보여주는 곡이었고 이를 OB들과 함께 연주한 것은 이러한 과거를 회상하는데 매우 적절하였다. 다만 단원들이나 지휘자가 이러한 정악풍의 ‘옛 곡(?)’에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전체적으로 음악의 내적 긴장감이 떨어져 연주의 문제가 아닌, 곡 자체의 지루함으로 보일 수 있는 아쉬움을 남겼다. 오히려 이 두 작품은 현재 만연하는, 국악관현악의 서양음악화, 단적으로 베이스 화성을 강화하고 선법 음악이 조성음악으로 대체되는 일련의 흐름에 경종을 고하고 국악관현악만의 독특한 개성과 품격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요컨대 1부의 곡들은 국악관현악만의 개성과 품격을 보여주는 대안이 될 수 있으나, 연주가 곡의 잠재력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군신화 중간에 나오는 정가 이중창과 가야금 협연은 여전히 국악 고유의 맛을 청중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해주었다.

카이

 

    기념 공연에 굳이 뮤지컬 배우에게 대중성을 수혈받을 만큼 

   우리(국악관현악)의 체질이 허약한가?

 

2부의 대중적 시도(뮤지컬 배우 초청, 대중가요 스타일)는 국악관현악의 체질적 약점과 정체성 혼란을 드러내었다. 뮤지컬 배우 카이의 협연과 위촉 관현악곡 두곡으로 이루어졌는데 이 두 섹션은 기획적인 측면에서 다른 결을 갖는다. 전자가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이 지난시기에 선도해온 국악가요 스타일의 대중적인 성악곡을 21세기 현재의 대중 감수성으로 녹여내 보자는 의도로 기획된 것이라면 후자의 두 곡은 60주년을 기점으로 국악관현악의 미래를 제시하는 의미에서 위촉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카이의 섭외와 선곡이 과연 적절했는가라는 질문에는 많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일단 카이의 음정은 중요한 순간에 불안했고 고음에서 플랫(b)되는 경향이 있어 연주 자체로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또한 연주자 섭외에 있어서, 국악계의 많은 ‘힙(?)’한 스타와 음악이 많은데, 이 중요한 기념 공연에 굳이 뮤지컬 배우에게 대중성을 수혈받을 만큼 우리의 체질이 허약한가 하는 질문을 떠올리게 했다.

이러한 의문은 미래를 상징하는 피날레 곡에서 더욱 증폭이 되었다. 이지수 작곡가는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는 양악 작곡가로서 영화음악을 많이 쓴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서양음악 작곡가들도 국악관현악곡을 많이 쓰고 또 좋은 작품을 내오고 있기 때문에 국악 작곡가들과 선의의 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국악 창작곡의 작품의 질이 높아지고 외연 확장을 이룰 수 있다. 그래서 작곡가 군의 다양화에 개방적 태도를 견지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지수의 신작은 국악적 고민이 부족해 서양음악의 아류에 머물렀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한 곡이었다. 전통적 창작 원리 대신 서양식 조성음악 논리를 차용할 경우 국악관현악이 본연의 존재 이유를 잃고 ‘짝퉁’에 머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상투적이고 진부한 화성전개(특히 후반부의 순환 베이스 무한반복)로 이루어진, 서양 팝스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할 법한 곡을 국악관현악으로 대체한 뒤 국악관현악으로 대체할 수 없는 몇몇 악기, 즉 건반악기와 금관악기 등 서양 악기를 추가한 것으로 여겨지는 곡이 연주되었기 때문이다.

지휘_이승원 단장

 

이런 식의 근시안적 대중화는 세월이 지나고 보면 국악관현악의 애호가층 형성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지난 60년간의 경험이 충분히 입증해왔다. 피날레 곡이 이러하다 보니 1부에서 2부의 흐름은 전체적으로 국악관현악의 역사가 진화가 아닌 정체 혹은 퇴보 상태에 머물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차라리 최지혜의 곡과 이지수의 곡을 바꿔 연주했더라면 그나마 ‘키치적인 서양음악의 국악관현악에 대한 압도적 승리{?}’라는 오명은 조금 덜어낼 수 있었으리라.

또한 음향에서도 데시벨은 과도한 수준이나 각 파트의 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 심각한 기술적 문제들이 노출되었다. 양악기가 대거 합류하면서 가뜩이나 안 들리는 현악기 파트 소리는 무언극을 보는 듯 소리를 판별하기 어려웠다. 

2부의 양· 국악기 혼합 편성은 국악관현악의 미래가 이런 식의 배합 관현악으로 갈 것인가? 음악적으로 왜 그래야 하는가? 라는 점에서 근본으로 한국 고유의 미학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서양음악사에서 근대를 추동시킨 흐름은 ‘다시 고전으로’, ‘중세 이전의 그리스로 돌아가자’는 르네상스 운동에서 시작되었고, 이러한 뿌리 찾기가 중세의 암흑기를 벗어나 새로운 근대라는 세계로 역사를 전환시켜 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번 공연은 국악관현악의 60년 역사에서 이러한 뿌리찾기 운동이 절실하다는 경종을 울려주었다.

다행히 이번 공연에서 건진 결과물은 프로그램 북에 실린 윤중강의 글이다. 지난 60년의 여정이 잘 정리, 해석되고 있고 이에 대한 평가도 평론가의 시선에서 예리하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찬찬히 읽다보면 국악관현악의 미래로 향한 해결책이 그 안에 내재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1960년대 지영희, 김희조 지휘자 시대의 민속악과 가무악희를 결합한 가운데 국악관현악의 정체성을 확립했던 그 시절의 지혜와 방향성을 어떻게 21세기적 특성에 맞게 재창조할 것인지, 이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뚝심있는 결단이 필요하다.

   

  국악관현악의 뿌리와 정체성에 대한 성찰, 

  그리고 전통과 현대의 조화로운 재창조가 요청된다         

 

우리는 지난 60년간 국악관현악의 옥석을 변별하여 옥을 바탕으로 국악관현악의 존재이유를 음악 내적으로 확보할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서양관현악의 클래식과 팝의 그림자를 배회하며 ‘아류’라는 정체성 시비의 늪에서 허우적 댈 것인지의 갈림길에 서 있다. 무엇이 옥인지는 좀 더 세부적인 개별 작업에서 논의가 풍성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석인지 그 하나는 확실히 언급할 수 있다. 근대 조성음악의 기초가 되는 온음계 화성학의 논리는 국악관현악단의 창작 원리의 근간에서 제거되어야 한다. 베이스 화성을 토대로 각 성부를 채우는 식으로 쓰이는 창작곡은 국악관현악이 서양 관현악의 아류라는 비판을 영원히 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국악관현악의 뿌리와 정체성에 대한 성찰, 그리고 전통과 현대의 조화로운 재창조가 요청되며 국악관현악이 서양음악의 그림자를 쫓기보다, 전통적 창작 원리를 바탕으로 독자적 음악적 가치를 확립해야 할 것이다.

 

이소영 음악평론가 themove99@daum.net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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