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창작음악의 활성화를 위한 몇가지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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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필에서는 한국작곡가의 곡이 연주되는 반면, 우리나라의 전국 단위 교향악단을 아우르는 <2025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4.1-4.20)에서는 한국 작곡가 작품이 단 한곡도 연주되지 않는다. 이것이 2025년 K-클래식의 현주소이다. 이 얼마나 모순된 현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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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클래식 열풍이 작곡 분야까지
2025년 1월, 베를린 필하모닉의 신년음악회 프로그램에 한국 작곡가 신동훈의 두 작품이 포함되었다. 이번 공연은 신동훈의 비올라 협주곡 '실낱 태양들(Threadsuns)'과 실내악곡 '오케스트라와 피아노를 위한 내 그림자(My Shadow for string orchestra & piano)'가 투간 소키에프의 지휘와 조성진의 피아노 협연으로 초연된 의미 있는 자리였다. 앞서 1월 8일은 이인식 작곡가의 '진도아리랑'이 런치 콘서트에 연주됐다. 이는 젊은 한국 작곡가로서는 이례적인 성과이며, K-클래식의 높아진 글로벌 위상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받는다. 베를린 필하모닉이 한국 작곡가의 작품을 신년 첫 공연에 배치한 결정은 사이먼 래틀 시대 이후 지속된 동시대 음악에 대한 베를린 필의 개방성과 한국작곡가의 독창적 음악 언어가 결합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예술감독 겸 지휘자가 한 악단의 성격 뿐만 아니라 그 나라 문화의 역량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좋은 선례가 아닐까.
기획 부재의 <교향악축제>
올해로 37회째를 맞는 <2025년 교향악축제>는 18개의 교향악단이 참여하지만, 한국 작곡가의 위촉곡 연주가 완전히 배제됐다. 이는 한국 작곡가들에 대한 홀대로 볼 수 있으며, 교향악축제의 퇴행적 면모를 보여준다. 또한 한국 악단을 이끄는 지휘자들이 한국 음악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낮은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음악에는 국경이 없다”는 통념은 유독 서양 클래식에는 들어맞는 것 같다. 또한 이 말은 음악에서의 국제주의를 지탱하는 명제와도 같다. 그러나 국제주의의 보편성이란 덮개를 걷어 그 세부로 들어가보면 음악에서 국경은 상대적으로 존재한다.
예컨대 프랑스 오케스트라들에게 드뷔시나 라벨의 곡이, 독일 오케스트라에게 브람스나 부르크너의 곡이 연주될 때 우리는 그 연주의 정통성을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지휘자나 연주자들에게도 국경 및 지역과 관련된 자산을 자신의 특장으로 삼는 경우는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
한 예로 서울시향의 상임지휘자였던 오스카벤스케가 시벨리우스 스페셜리스트로 활동한 데에는 그가 핀란드 출신이라는 것이 1차적으로 작용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우, 예컨대 정명훈처럼 세계적인 한국 출신 지휘자가 한국음악의 단골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는가? 기껏 해외에서 즐겨 연주되는 것은 북한의 아리랑환상곡 정도이다. 한국 오케스트라는 한국 작곡가들의 곡에 대해 얼마나 애정이 있고 전문성을 갖는지 살펴본다면 한국 작곡가들에 대한 홀대는 처참할 정도다.
다시 문제의 교향악축제로 돌아가보자.
예술의 전당 주관의 교향악 축제는 초창기부터 국내 작곡가에게 위촉한 곡을 초연하는 전통이 시작되어 2022년에는 2명의 창작곡 위촉 작곡가가 참여하였다. 작년에도 한 곡이 위촉 초연되었는데, 이마저도 없어진 것이다. 교향악축제의 발걸음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멈추거나 뒤로 돌아 퇴행하는 듯 해서 매우 안타깝다. 올해 야심차게 붙인 “The New Beginning” 이란 타이틀이 무색할 지경이다. 퇴행이 새로운 시작이란 말인가? 사실 교향악 축제는 37년이 지나도록 전담 예술감독없이 전국적 축제를 꾸리면서 어떤 방향성도 없이 개별 교향악단에게 모든 프로그램을 일임하는 것도 문제이다. 예술감독의 부재가 기획의 부재를 낳고 기획의 부재가 한국 클래식음악의 미래를 바라보며 한국창작음악을 육성하는 비전에 이르지 못하는 악순환을 낳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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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향 1월 프로그램 |
스스로의 자산을 돌보지 않는 서울시향
서울시향 역시 2025년 첫 공연에서 말러의 단일 편성을 선보이며, 한국 창작음악에 대한 인식 부족을 드러냈다. 다만, 10월 말 미국 순회연주에 신동훈과 정재일 작곡가의 작품을 포함시키기로 했다.
베를린 필의 신년 음악회가 없었다면, 과연 한국 작곡가의 곡을 가지고 나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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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작곡가 신동훈이 누구인가? 서울시향의 ‘아르스노바 연주회’ 시리즈가 키운 소위 ‘진은숙 키즈’ 아닌가?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자산이 자산인지도 모르고 어렵게 형성한 문화 자산을 제대로 활용할 줄을 모른다.
우리의 시선이 이 곳이 아닌 유럽 어딘가에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는 선진국 반열에 올랐는데도 여전히 문화적으로는 유럽문화에 대하여 정신적 식민상태에 머물고 있는 건 아닌지. 인문학에서는 탈식민주의 이론이 한때 풍미하다 한풀 꺾인 듯한데 음악계, 특히 서양 클래식계의 시간과 장소는 19세기 말 유럽에 멈춰진 듯 하다.
한 명의 세계적인 작곡가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한국 연주가들이 세계 콩쿨에서 석권하며 이룬 K클래식의 르네상스를 한국예술종합학교라는 국립 콘서바토리의 자생적 영재교육이라는 밑받침 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으로 여기는 사람은 없다.
신동훈 같은 젊은 작곡가들의 국제적 부상 역시 서울 시향의 13년간 지속된 ‘아르스노바’ 연주회 시리즈와 부대 프로그램의 영향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서울시향은 다시 한번 자신들이 쌓아온 과거의 자산을 돌아보며 외국 지휘자나 협연자 초청 비용의 일부라도 배분하여 다시 ‘아르스노바’ 시리즈를 부활시키길 바란다. K클래식의 진정한 완성이라 할 수 있는 한국 창작음악 활성화에 서울 시향같은 우리 악단의 1인자가 힘을 보태길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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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창작음악의 활성화를 위한 몇가지 제언
1) 쿼터제 정책 도입: 강제보다는 보상과 지원 정책으로
이러한 사태를 통감한 평론가와 저널리스트가 주축이 되어 “음악공연에 쿼터제가 필요하다”는 주제의 긴급 토론회가 지난 1월17일에 있었다. 대한민국 클래식 공연에서 연주되는 곡의 99%가 외국 작곡가들의 곡으로 우리 작곡가들이 설 자리가 없다는 고질적인 문제에 대한 상황인식이 이제야 봇물 터지듯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K클래식 열풍에서 마지막 보루인 작곡 분야, 이 분야의 활성화를 위해서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상당히 귀담아 들을만한 논점들이 다루어졌다. 그 중에서도 40여년 전 시행된 음악학자 이강숙의 쿼터제 정책이 다시 주목을 받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설립한 초대 총장 이강숙은 1981년부터 1983년까지 KBS교향악단의 초대 음악감독직을 맡아 그의 재임기간 동안에 한국음악을 중심으로 한 철학적 접근을 통해 교향악단을 이끌고자 했다. 그 구체적인 실현 방안으로 정기연주회마다 반드시 한국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하도록 한 것인데 이강숙의 이러한 노력으로 창작음악이 잠시 활발히 연주되는 듯 했다. 그러나 교향악단과의 마찰로 인해 결국 사표 제출로 이어지고 2년 만에 쿼터제 정책도 폐기되고 그 이후 이만한 적극적인 한국음악 활성화 정책은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실 이러한 쿼터제가 꾸준히 KBS뿐만 아니라 다른 악단에도 확대되어 30년 정도 지속되었다면 한국 창작음악의 현주소가 얼마나 달라졌을지 생각만해도 아쉽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굿스테이지 송인호 발행인이 국공립단체 신년음악회 레퍼토리의 99%가 서양고전음악으로 채워진 현실을 지적하며, 영화계의 스크린쿼터제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할 것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 최우정 작곡가는 "임시 보호를 통한 경쟁력 강화" 개념의 쿼터제를 제안하며, 단순한 강제할당이 아닌 창작-연주-평가의 선순환 시스템 구축 필요성을 강조했다.
필자 역시 규제를 통한 강제성을 갖기 보다는 한국음악을 연주할 때 예산에 대한 지원과 보상을 국가가 보장해주는 방식이 바람직할 것이라 여겨진다. 쿼터제 정책 도입은 강제보다는 보상과 지원 정책으로 접근해서 국공립단체의 연간 공연에서 10-20%의 한국창작음악 연주를 권장하고 이에 대한 국가 예산 추가 지원을 보장하길 제언한다.
2) 상주작곡가 제도 도입
현재 국립교향악단과 국립합창단에 상주작곡가 제도가 있기는 하나 작곡가가 많아야 한 두명이고 곡 수도 제한적이어서 전체 작곡가들의 요구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국공립의 극장 및 교향악단, 합창단, 페스티벌에 상주작곡가 제도를 의무화 하여 창작 기회를 제공하고 연주와 수용의 연계를 강화하여야 한다.
http://www.ithemove.com/news/articleView.html?idxno=3728
3) 공공기관의 예산 재정립 필요성
쿼터제 토론회에서 최우정 작곡가는 국공립단체의 창작지원 시스템이 오히려 사설 단체에 비해 현저히 낙후되었다고 지적했다. 국가 예산의 90% 이상이 인건비로 집행되며, 창작 지원 예산이 사실상 형해화되고 있는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국립교향악단의 상주작곡가 제도와 같은 예외적 사례를 제외하면 체계적인 레퍼토리 개발이 어려운 실정인 것이다. KBS 국악관현악단 박상후 지휘자 역시 공연제작예산 부족이 창작활동의 최대 걸림돌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창작 지원 예산을 별도로 마련하여 작곡가에 대한 지원을 제도화해야 한다. 먼저 사업비를 늘리고 사업비 안에서도 창작 지원 예산- 작곡 사용료 혹은 위촉료-을 따로 마련하여 연주자 사례비와 별도로 창작자에 대한 지원을 제도적으로 마련하는데 공공기관이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다.
4) 연주자 플랫폼 활용
이외에도 다양한 활성화 프로그램을 강구해야 한다. 먼저 연주자 플랫폼을 활용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음악대학 재학시절부터 지휘 전공과 연주 전공 학생들을 대상으로 창작음악 워크숍을 커리큘럼에 넣고 작곡과 학생들의 작품 발표에 기악과 학생들이 많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져야 한다. 미래의 연주자들에게 한국창작음악과 현대음악 전반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작곡가와 연주가사이의 정신적, 물질적 유대는 빠를수록 좋다. 특히 현재 클래식계의 시장 상황을 고려해보면 연주자들이 스타 시스템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만큼 연주자들을 창작음악의 플랫폼으로 사용하는 전략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번 베를린필 협연에서도 신동훈의 곡을 조성진이 연주하였기에 좀 더 화제성을 낳았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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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3월 23-25일까지 진행되는 임윤찬의 피아노 리사이틀에서 바흐의 <골드베르크변주곡> 연주되는데 서주격으로 2006년 생 이하느리의 피아노 곡 “Round and velvery-smooth blend”이 연주 될 예정이다.
https://www.artgy.or.kr/PF/PF0201V.aspx?showid=0000007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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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찬과 같은 월드 클래스 레벨의 슈퍼스타 연주회는 한국 작곡가들의 작품이 대중에게 소개되는 매우 효과적인 통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임윤찬의 선곡에 박수를 보낸다.
국공립악단에서 한국 곡을 넣지 않는 이유로 티켓이 안 팔린다는 궁색한 변명을 대고 있다. 그러나 두시간 가까운 곡에서 10여분 안팎의 한국 곡 하나를 끼워 넣는 것이 티켓팅에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칠지 의심스러운 뿐만 아니라 설사 그렇더라도 임윤찬처럼 자체적인 티켓 경쟁력을 갖추어 열악한 한국 창작계를 지원하는 플랫폼 역할을 스스로 자임하는 여유와 안목과 실력이 요구된다. 임윤찬은 일찍이 예원 시절부터 스스로도 작곡에 관심을 가졌으며 작곡가 친구들의 곡을 즐겨 연주하고 주변에 소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이른 나이부터 현대 곡에 대한 남다른 안목과 애정이 있었기에 윤이상 국제콩쿨에서 윤이상의 피아노곡 연주에서 탁월한 결과를 보여주었고 반 클라이번 콩쿨에서도 전체 1등 외에 현대곡 수상을 따로 받는 결과를 낳은 것 아닐까.
5) 콩쿨에서 한국창작곡 의무화
임윤찬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요사이는 각종 콩쿨에서 현대곡을 필수적으로 넣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러한 기회를 이용하여 한국 콩쿨에서 만이라도 한국 창작곡을 의무화시키는 방법도 고려할 만 한다. 연주자들은 좋든 싫든 이러한 기회를 통해 일단 한국 현대곡에 익숙하게 될 것이고 나아가 이를 통해 자신에게 맞는 레퍼토리나 작곡가를 발견하는 계기도 생길 수 있다. 국제무대를 위한 레퍼토리 개발에 있어서도 한국적 장단이나 정서가 배면에 깔린 곡들을 한국 연주가들이 잘 할 수 있는 고유한 특장으로 삼는다면 한국 연주가들이 한국 창작곡을 연주하는 것은 연주와 작곡 모두에게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6) 음악애호가들에게 교육 프로그램 확대
일반 음악애호가들에게도 보다 전략적이고 적극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각 악단이나 문화예술위원회와 그 산하에 있는 아창제 등 국공립 기관이나 축제사무국, 나아가 극장이나 주요 공연장에서 창작 아카데미나 프리 렉처 콘서트 등을 진행하고 청중 참여 이벤트를 고안하는 등 다각적인 방법을 통해 일반 청중들, 특히 서양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한국창작음악과 현대음악에 대한 접근성과 이해를 높여야 한다.
문화주권 시대를 향하여
지난 1월 토론회에서 제기된 '쿼터제 도입‘ 논의는 일회성 행사의 주제로 치부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쿼터제를 20세기 개발도상국 시절에나 필요한 보호무역주의와 같은 발상으로 간주할 일도 아니다. 이미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화 패러다임이 무너지며 다시 보호무역주의가 고개를 들며 각자 도생이라는 엄혹한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 이에 문화 역시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예외가 아니다. 우리가 문화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보호하고 긍정하는 인식 전환이 그 어느때보다 필요하며 남의 것을 따라가는 중진국 시선에서 탈피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쿼터제 도입 논의는 문화정책 당국에 진지하게 전달되어 구체적인 지원 시스템 마련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K클래식의 진정한 완성은 한국 창작음악의 활성화에 달려있다. 필수적 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와 인식전환이 시급하며 공공기관과 예술가들의 협력이 그 어느때 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소영 음악평론가 themove99@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