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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창경궁의 아침>에서 길어 올린 여름행복

기사승인 2018.08.12  14: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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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우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지요.

술 항아리 옆에 둔 채 거문고 줄을 고르노라니,

나처럼 한가한 친구가 찾아오네요.’

 

조선시대 인물 김민순(金敏淳)이라는 분의 시조를 좀 쉽게 풀어봤다. 한가로움 속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아침 음악 풍경이 좋다. 고요하다 못해 적막감이 감도는 시간, 새 울음소리, 거문고 타는 소리, 친구가 찾아오는 소리가 차례로 하나씩 더해지는 그런 아침.

십년 전쯤, 이런 옛 글 읽으며 상상해봤던 느낌을 모닝콘서트로 기획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마침 기회가 있기에 ‘운치 있는 한옥이나 궁궐에서 신새벽에 시작하는 모닝 콘서트 한번 해보면 얼마나 멋지겠냐’는 제안을 해봤다. 이 말 듣자마자 ‘이른 아침에 누가 국악 들으러 오겠냐’며 웃어 넘겼던 이가 어느 날. 궁궐 아침 음악회 판을 벌인다고 연락해왔다. 그것도 <창경궁의 아침>이라는 멋진 제목을 붙이고, 국립국악원 연주단의 긴 음악 전곡을 이어 연주한다는 기쁜 소식이었다.

 

2008년 여름이었다. 더욱 좋은 일은 이듬해부터였다. 이 음악회가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7월 말경부터 8월 까지 주말마다 계속되었다. 나는 운좋게도 그 음악회의 진행을 맡아 한 여름동안 매주 토요일 아침을 창경궁에서 맞았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그리고 다시 2015년과 2016년까지 6년동안이나 함께하는 동안 이 특별한 시공간의 꿈같 같은 음악 추억은 내 깊은 마음 속 행복 곳간에 고이 저장되어있다. 아침 7시 . 궁궐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길. 있는 그대로 최상의 음악공간이 되어준 명정전 후면 회랑, 국립국악원 정악단의 연주와 노래, 궁중무용 춘앵전. 좋은 맘으로 함께해 준 관객들 모두 좋았던 '여름행복' 이다. 이 음악회에서는 다 같이 옛글에서 가려뽑은 짧은 글 한편을 소리내어 읽었다. 그 중에 다산 정약용의 글 ‘더위를 물리는 여덟가지 일’이라는 글도 있었다.

 

다산은 57세에 18년의 귀양살이를 마치고 고향인 소내(현재 남양주 조안)에 돌아와 지냈다. 63세 되던 1824년 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리자 '더위를 물리는 여덟 가지 일(消暑八事)'이라는 글을 지었는데 ‘선조들의 피서법’을 거론할 때 마다 빠지지 않는 유명한 문구들이다.

 

다산이 꼽은 여덟가지는

 

〇 송단호시(松壇弧矢) - 솔밭에서 활쏘기

〇 괴음추천(槐陰鞦韆) - 느티나무 아래에서 그네타기

〇 허각투호(虛閣投壺) - 넓은 정각에서 투호하기

〇 청점혁기(淸簟奕棊) - 대자리 깔고 바둑 두기

〇 서지상하(西池賞荷) - 연못의 연꽃 구경하기

〇 동림청선(東林聽蟬) - 숲속에서 매미소리 듣기

〇 우일사운(雨日射韻) - 비오는 날 한시 짓기

〇 월야탁족(月夜濯足) - 달밤에 개울가에서 발 씻기

 

등이다. ‘달밤에 개울가에서 발씻기’ 는 지금이라도 해볼 수 있겠고. 조금 더 마음기울이면 <숲속에서 매미 소리 듣기–동림청선(東林聽蟬)>의 느낌도 공감할 수 있다.

 

자하홍로 서광천 紫霞紅露曙光天 만적림중 제일선 萬寂林中第一蟬

고경도과 비세계 苦境都過非世界 둔근청탈 즉신선 鈍根淸脫卽神仙

고표묘창 릉허보 高飄妙唱凌虛步 선익애사 범학선 旋搦哀絲汎壑船

청도석양 성갱호 聽到夕陽聲更好 이상욕근 노괴변 移床欲近老槐邊

 

자줏빛 아침 놀, 붉은 이슬 맑은 새벽하늘에

적막한 숲 속에서 첫 매미 소리 들리니

괴로운 지경 다 지나가 이 세상이 아니요

둔한 마음 맑게 초탈하니 바로 신선이로세

높이 나는 묘한 곡조 허공을 넘노는 듯

슬픈 곡조는 바다에 둥둥 뜬 배인 듯

석양녘에 듣는 소리 더욱 더 좋아

늙은 홰나무 근처로 자리를 옮겨앉네.

 

평소에는 읽기 힘든 글일 수 있지만 이른 아침 궁궐 전각에서, 우리음악을 듣다가 작은 목소리로 낭송 할 때의 마음 공명은 긴 여운을 남겼다. 더운 여름날. 마음속에 저장된 이런 여름 행복들은 그 어떤 '냉차' 못지않다. 이 느낌 소환해 음악 생각하며 옛글 읽고. 옛글 읽으며 음악 듣는 즐거움을 누린다. 요즘 듣고 있는 음악은 박인호 작곡 <낮잠을 깨니 흰구름 둥둥>, 요즘 읽고 있는 옛글은 <한국산문선>전집이다. 누가 이른 아침 음악회 한다는 소식 전해오면 들고 가서 읽고 싶은 구절들이 수두룩하다. 이런 충만감으로 올 더위도 잊는다.

 

 

송혜진

 국악방송 사장, ‘질서와 친화의 변주’, ‘꿈꾸는 거문고’, ‘한국음악 첫걸음’, ‘신재효’, ‘삼죽금보’ 등 저서 다수

사진제공 전통진흥재단

 

 

THE MOVE Press@ithem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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