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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남수의 무빙액트] 세한도를 아십니까?

기사승인 2020.08.07  12: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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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추사>

국보 제180호. 가로 69.2㎝, 세로 23㎝. 종이 바탕에 수묵으로 그린 이 자그마한 그림은 조선 말기 세도정치에 도전했다가 지위와 권력을 모두 잃고 제주도에 유배당해 있던 추사 김정희 선생이 자신을 잊지 않고 두 번씩이나 북경(北京)에서 귀한 책들을 구해다 준 제자 이상적(李尙迪)에게 1844년(헌종 10년)에 답례로 그려준 것입니다.

 

메마른 붓질로 그려 놓은 작은 집 한 채와 나무 몇 그루가 전부인 이 그림의 오른쪽 위에는 ‘歲寒圖 세한도’라는 제목과 함께 ‘藕船是賞 우선시상’, ‘阮堂 완당’이라는 관지가 적혀 있습니다. 추운 겨울의 그림이라 이름 짓고 제자인 우선 이상적에게 주는 그림이라고 적어 놓은 것입니다. 세한도(歲寒圖)는 논어 자한편에 있는 歲寒然後知 松栢之後凋(세한연후지 송백지후조:한겨울 추운 날씨가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비로소 알 수 있다)에서 따온 것으로, 힘든 시절 임에도 선비의 기상을 잃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의 표현이자, 권세나 이익을 쫓지 않고 자신을 기억해 준 제자의 변치 않는 의리에 대한 감격이 담겨 있습니다.

역관 이상적은 이 그림을 가지고 청으로 가서 중국의 대표적인 학자들에게 보여줍니다. 세한도를 본 청의 학자들은 일체의 기교를 거부한 고졸한 분위기의 문자향 가득한 그림을 보고 앞다투어 제와 찬을 쏟아냅니다. 돌아온 후에도 몇 사람의 찬이 덧붙여져 세한도는 무려 10m에 달하는 장대한 작품이 됩니다.

 

24세에 청운의 꿈을 안고 청나라 연경으로, 금석학과 고증을 위하여 전국팔도의 험산 준령으로, 효명세자와 함께 강국의 꿈을 꾸며 조정으로, 그러다 8년 3개월의 제주도 유배 생활, 해배 후에 잠시 한강의 언덕에 머물다 다시 북청 유배를 떠났던 추사 선생의 삶을 그대로 닮아 그랬는지, 세한도 또한 파란만장한 운명에 떠밀렸습니다. 세한도는 이상적 사후에 민영휘 일가로 넘어갔다가 경성제국대학의 교수로 추사연구가였던 후지츠카 치카시(藤塚隣)의 손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태평양전쟁의 혼란 속에 후지츠카는 세한도를 비롯한 많은 추사의 작품과 자료들을 가지고 일본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서예가 손재형(孫在馨, 1902년~1981년)이 현해탄을 건너 연합군의 공습으로 몹시 위험했던 동경까지 세한도를 찾아갑니다. 연이은 거절에도 굴하지 않고 석 달을 동경에 머물며 간청에 간청을 거듭한 끝에 결국 세한도를 양도받게 됩니다. 손재형이 답례로 백지수표를 건넸지만 후지츠카는 “선비의 물건을 돈으로 따질 수 없다”며 “어떠한 보상도 원치 않으니 대신 잘 보존해 달라”고만 했다는 일화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손재형이 세한도를 양도받고 난 석 달 뒤인 1945년 3월, 도쿄 대공습으로 후지츠카의 서재가 모조리 불타버리면서 그가 수집한 추사의 수많은 작품들도 함께 사라졌다고 하니 생각해보면 참으로 아찔한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세한도의 운명은 한반도로 건너온 후에도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손재형이 선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사채업자에게 저당 잡혔다가 되찾지 못하는 등 또다시 이리저리 떠돌다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기탁되어 있습니다.

과지초당이 자리한 과천시에서 뮤지컬 <추사>를 제작했습니다. 뮤지컬 <추사>는 세한도를 찾아 동경으로 간 손재형과 후지츠카 치카시의 대화를 통해 추사 김정희가 품었던 꿈과 이상을 풀어냅니다. 권력 다툼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바다 건너에 유배되었던 추사와 제 나라를 잃고 떠밀려 간 그의 그림. 그림과 글에 담긴 굳은 절개와 처절한 고독. 베끼고 답습하기만 하던 기존가치와 제도권의 질서를 깨트리고자 끊임없이 투쟁했던 추사의 험난했던 삶의 여정이 무대에 오릅니다. 세상을 밝히고 백성을 구할 길을 평생을 통해 종이 위로 그려나갔던 선비. 그러나 “추사에 대해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아는 사람도 없다.”는 유홍준 선생의 말처럼, 우리는 추사에 대해 사실 별로 아는 게 없습니다. 뮤지컬 <추사>가 그에 대해 좀 더 아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알면 보인다 했으니, 뮤지컬 <추사>를 통해 세한도에 담긴 참 선비의 뜻이, 꿈틀거리는 그의 글씨에 어린 나라를 위한 꿈들이, 선생께서 그리도 기다리던 해배처럼, 해방처럼, 봄처럼, 이 땅에 다시 피어오르기를 바래봅니다.

 

진남수 (호원대 교수, 극작가, 배우)

 

 

진남수 호원대 교수 / 극작가, 배우 namsulse@hanmail.net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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