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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남수의 무빙액트] <레 미제라블>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산

기사승인 2020.09.05  03:2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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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약수동에서 5.18 30주년 기념 뮤지컬 <화려한 휴가>를 연습하던 어느 날 저녁, 문득 <레미제라블>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근처에 있던 작은 서점에 들어갔다. 

매장 가운데 수북이 쌓여 있던 중고생자습서, 참고서, 문제집들... 한쪽 벽면 구석으로 세계명작소설... 문학전집…. 하지만 이리저리 둘러봐도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은 보이지 않았다. 

“아저씨! 레미제라블 없어요?”

 “거기 위쪽으로 한 번 찾아보세요.”

 “어... 없는 것 같은데요..” 

“그래요? 그럼 없어요.” 

“네? 네.. 수고하세요...” 

간만에 피었던 독서의 불씨가 피식 사그라들며 서점을 나왔다. ‘아무리 학교 앞 서점이라지만 그 유명한 책이 어떻게 없을 수가 있지? 쳇!’ 그 순간 옆으로 갸웃 넘어갔던 머리는 며칠 후, 대형서점에서 책을 발견하자마자 곧바로 앞뒤로 끄덕여졌다. ‘1, 2, 3...4..5?’ 기껏해야 두 권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던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은 두껍고 빽빽한 5권짜리, 무려 2500페이지에 달하는 초대작이었으니, 약수동 작은 서점의 빼곡한 책꽂이 사정상 팔리지도 않고 자리만 차지하는 이 벽돌같이 두꺼운 책들을 어찌 마냥 꽂아둘 수 있었겠는가! 책을 감싸고 있는 빨간 띠지에는 제법 자극적인 문구가 몇 줄 적혀 있었다.

 “... 인류 최고 위대한 영혼의 서사 로망 <레미제라블> 뮤지컬만 보고 운운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좀 늦었지만, 드디어 나도 레미제라블을 읽어보는구나!’ 회심의 미소를 머금고 책을 펼쳤다. 1권을 한 백 페이지쯤 읽었을까? “아... 아후...”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도 않는 당시의 프랑스와 교회에 관한 장황한 설명들을 꾸역꾸역 읽다가 주인공 장발장이 미처 등장하기도 전에 결국 책을 덮어버리고 말았다. 그 길로 그 책들은 우리 집 책꽂이에 자리만 잔뜩 차지하고 들어앉아 버렸다.

누군가 그랬다. “<레미제라블>을 읽기 위해서는 남다른 인내심과 성실함을 필요로 해요.”

10년 만에 용기를 내어 다시 그 책을 펼쳤다. 뮤지컬 수업을 위한 참고자료이기도 했지만, 이번에도 안 읽으면 평생 못 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뮤지컬 공연을 보며 느꼈던 어딘가 허전함의 기억이 책 읽기를 재차 부추겨 주었다. 여전히 순조롭지는 않았다. 하지만 느낄 수 있었다. ‘한 장 한 장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책의 두께만큼 깊숙이 들어 있는 장발장의 드라마로 가기 위해서는 길목마다 버티고 있는 당대 프랑스의 사회와 문화와 역사의 바리케이드를 넘어가야만 한다. 그래야만 사람을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레미제라블>은 지난 백 년 간 정상을 정복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도전해온 높은 산과 같은 작품이다. 

<Bring him home> <On my own> <Do you hear the people sing?> 등 주옥같은 넘버들로 유명한 뮤지컬뿐만 아니라 앙리 페스쿠르가 감독하고 가브리엘 가브리오, 폴 조르주가 출연한 1925년 판 레미제라블(상영시간 6시간 19분)을 필두로 하여, 1934년 레이몽 베르나르 감독, 아리 보르 주연, 1957년 장 가방 주연, 1995년 장 폴 벨몽도 주연, 1998년 리안 니슨 주연, 그리고 2012년에는 휴 잭맨과 러셀 크로우, 앤 해서웨이 등이 출연한 뮤지컬 영화에 이르기까지 영화로도 부단히 제작되었다.

 또한, 제라르 드빠르디유와 존 말코비치 주연의 드라마와 최근작이라고 할 수 있는 2018년에 제작된 도미닉 웨스트 주연의 BBC 드라마도 있다. 특히 BBC 버전은 평단과 대중 양측에서 고전을 리메이크한 최고의 TV 시리즈라는 극찬을 받았는데, <오만과 편견> <전쟁과 평화> 그리고 <하우스 오브 카드>의 각본을 쓰기도 했던 이 시리즈의 작가 앤드루 데이비스(83세)는 대중에게 익숙한 “끔찍한 뮤지컬로부터 빅토르 위고를 구해내기 위해” 새로운 레미제라블을 썼다고 밝힌 바 있다. 

그의 작품은 시대의 모습을 우선 주목하게 만든다. 부르주아가 생기고 경제성장은 했지만, 임금은 낮았고 물가는 높았던 술과 매춘과 부랑아의 시대, 가난과 질병과 죽음의 시대. 그는 1800년대의 프랑스를 불러내어 오늘날의 세계가 지닌 불평등의 문제와 연결 짓고 있는 듯 했다. 고전의 재해석에 능통한 팔순의 노작가. 그럼에도 6부작이라는 한정된 분량 안에 고전을 재해석하여 그것도 <레미제라블>을 담아내기란 얼마나 힘겹고 고단한 투쟁이었을까.

'2020 연극의 해'를 머리에 내걸고 예술의전당에 연극 <레미제라블>의 간판이 붙었다. 무심히 극장 앞을 지나는 사람들이 한마디씩 한다. “뮤지컬이 아니네?” “레미제라블이 연극도 있어?” 그렇다. 어찌 산을 오르는 길이 하나뿐이겠는가. 뮤지컬도 영화도 드라마도 있는데 연극이라고 왜 만들어 낼 수 없겠는가. 허나 분명한 사실 하나는 <레미제라블>이 실은 아주 두꺼운 소설이라는 것이다. 

시간의 한정과 공간의 한계가 너무나 분명하다. 인물의 심정과 작품의 주제를 직접적으로 토로하고, 이야기의 개연성보다는 스토리의 연결을 우선시하기 십상이다. 게다가 인물의 거대한 감정은 이야기를 쌓아 올릴 수 없다면 그만큼 이성적인 형식으로 균형을 잡아야 한다. 깊고 험난한 산길이다. 그 길에 들어선 연극<레미제라블>이 연극도 있다는 제시에 그치지 않고 연극이 있어야 하는 이유를 증명할 수 있다면, 사진만 찍고 옮겨 다니는 여정이 아니라, 이쪽 산길에서만 바라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 앞에 우리를 멈춰 세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진남수 (배우, 작가, 호원대교수)

 

진남수 호원대 교수 / 극작가, 배우 namsulse@hanmail.net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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