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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Jun Markl과 홍콩필 하모닉 Hongkong Philharmonic Orchestra

기사승인 2018.05.03  20: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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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텍스트보다 직관적으로 설명하는 파도 에너지의 원리 그리고 오케스트라의 지향점

 

Hosokawa - Circulating Ocean(홍콩 초연)

Falla - Nights in the Gardens of Spains

Mendelssohn - The Hebrides Overture

Debussy - La Mer

 

[허명현의 클래식 감성회로]

3월 30, 31일 양일에 걸쳐 홍콩문화센터(Hong Kong Cultural Centre)에서는 홍콩필의 3월 정기공연이 있었다. 유럽 유수의 오케스트라에 비하면 60년이라는 짧은 역사를 지녔지만, 홍콩필은 2012년부터 얍 판 츠베덴이 상임지휘자의 자리를 맡게 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현재는 ‘아시아에서 가장 잘하는 오케스트라’ 라는 타이틀도 과장이 아니며, 최근에는 바그너 ‘니벨룽의 반지’ 전곡 도전을 성공리에 마쳤다. 국내에는 2017년 교향악 축제 당시 내한해, 압도적인 실력을 보였다.

 

3월 정기공연 메인 프로그램은 호소카와의 ‘Circulating Ocean’, 멘델스존의 ‘핑갈의 동굴’, 드뷔시의 ‘바다’로 이루어져 있었다. 파야의 작품 ‘Nights in the Gardens of Spains’은 이 넘실대는 바다 사이에서 아기자기하게 아슬아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파야의 작품을 협연한 피아니스트는 잉그리드 플리터(Ingrid Fliter)였다. 피아니스트 잉그리드 플리터는 윤디가 우승한 2000년 쇼팽콩쿠르의 은메달리스트로 잘 알려져 있다. 세련된 터치, 신비로운 음색, 때로는 스페인식 리듬의 진행으로, 밤의 미스테리함과 독특한 이국적 감성을 표현해냈다. 앙코르로 연주된, 또 다른 밤의 노래 쇼팽의 녹턴 역시 흠잡을 점 없이 훌륭했다. 구렁이 담 넘듯, 미세하게 화성을 변화시켜가는 왼손의 반주가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이날의 공연의 메인 테마는 시대별로 그려낸 역동적인 바다의 모습이다. 특히 국내에서는 보기 힘든 토시오 호소카와(Toshio Hosokawa)의 Circulating Ocean의 실황을 볼 수 있었다. 곡의 시작과 끝에서 볼 수 있는, 조용히 지나가는 바람의 표현은 홍콩필의 저력을 단번에 보여주었다. 실제 바람 소리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하모닉스의 활용 등 현악기들은 아주 미세하게 현을 컨트롤했다. ‘introduction’ 이 끝날 무렵에는, 바람이 점점 가까워져 온다는 표현을 청각적으로 구현해 냈다.

 

‘Waves from the Ocean’ 에서는 파도와 바람이 번갈아가며, 공연장을 흔들었다. 이후 이어지는 ‘Storm’ 에는 비가 내리는 장면을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날카로운 소리들과, 템포를 극단적으로 늦추어, 폭풍우의 크기를 한층 강화하였다.

공연은 ‘핑갈의 동굴’과 드뷔시의 ‘바다’ 로 이어지면서, 2시간 내내 공연장은 파도가 넘실댔다. 때로는 현악군으로, 때로는 목관군으로, 때로는 금관군으로 그 크기와 모양, 색깔까지 달리했다. 멘델스존의 파도가 넘실대나 싶더니, 공연장은 70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드뷔시의 파도로 가득 찼다. 이어 순식간에 다시 100년의 시간을 뛰어 넘어, 호소카와의 폭풍우가 몰아쳤다. 홍콩에서의 2시간은 200년에 가까운 시간을 압축해 제시했다.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바다’라는 자연을 인간들은 얼마나 다르게 인식해왔는지를 한 순간에 보여주었다.

끝없이 관객들을 파도에 태우고, 청각이라는 감각은 시각이라는 감각으로 전이되었다. 그리고 눈앞에 떠다니는 파도로 멀미가 날 지경에 이르렀다. Jun Markl과 홍콩필은 공연장 밖 홍콩의 바다를 공연장 안으로 끌고 왔다. 텍스트로는 이해하기 힘들었던 파도 에너지의 원리와 움직임은 오늘 음악과 함께 직관적으로 다가 왔다. 이날의 가장 놀라운 건 이들의 밸런스였다. 주선율로 다른 악기들의 소리를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완벽한 균형을 보여준다. 금관과 현악이 거대한 파도를 만들어도, 플룻 등 목관의 소리가 매우 균형 잡혀 들린다. 모네의 ‘해돋이’를 떠올리게 하며, 바닷물 위로 빛나는 햇빛의 미묘한 변화마저 느껴졌다. 공연이 끝나고, 곳곳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오늘 공연 환호의 절반은 뚜렷한 테마를 가진 기획에서 온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홍콩필이 자신들이 원하는 테마를 기획할 수 있는 자신감의 근원은 당연히 실력이다. 굳건한 상임지휘자의 역할과 열정, 오케스트라 대표의 뚜렷한 예술철학이 그 실력을 만들고 지탱하고 있다. 홍콩필의 대표 마이클 맥러드 역시 음악으로 대중을 설득해야 한다는 믿음이 강하다. 잘 만들어진 음악은 언젠간 사람들을 콘서트홀로 불러 모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들은 이 믿음을 바탕으로 홍콩에서 바그너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홍콩의 인구는 700만 여명이고, 이는 사실상 서울과 경기도의 인구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홍콩이라는 도시는 아시아 최고의 오케스트라를 가지고 있으며, 아시아의 문화 중심지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는 불같이 뜨겁다. 이는 비단 홍콩뿐만 아니라 우리와 가까이 위치하는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NHK 심포니의 2018-19시즌 프로그램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뚜렷한 구심점인 지휘자 파보 예르비와 함께 광범위한 레퍼토리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지휘자의 역할과 오케스트라의 대표의 소신, 그리고 지자체의 역할은 오케스트라 발전에 상상 이상으로 중요하다. 단원들의 기량은 그 다음 문제이다. 오랜 공백 기간 끝에 간신히 대표 자리를 메꾼 서울시향, 성시연 지휘자를 보내고 상임지휘자를 찾은 경기필 등 국내를 대표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들 역시 여기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답을 찾는 과정은 이보다 훨씬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허명현(음악칼럼니스트)

 

THE MOVE Press@ithemove.com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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