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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기사승인 2019.05.17  18: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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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오 호소카와의 현대오페라 <바다에서 온 여인>을 보고

도시오 호소카와 <바다에서 온 여인>

세계무대에서 주목받고 있는 신예지휘자 미하엘 잔덜링이 이끄는 스위스의 루체른심포니오케스트라의 베토벤 교향곡 5번 c단조 Op.67 <운명>으로 시작된 2019 통영국제음악제 개막공연의 감동적 울림이 콘서트홀을 가득 메운 사이, 건너편 블랙박스 극장-이 중극장은 가변적 무대로 한국에서 매력적인 무대공간 중의 하나다-에서는 통영국제음악제 상주작곡가이자 윤이상 선생의 베를린 시절의 제자인 Toshio Hosokawa(도시오 호소카와)의 아시아 초연작인 단막오페라 <바다에서 온 여인>이 조용히 개막을 준비하고 있었다.

밤 10시 공연! 유럽의 야외오페라 공연이 썸머타임을 적용해서 일몰 후 공연하는 것은 봤어도 공공극장에서 이 시간의 관람 경험이 생소한 나로서는 개막공연 관람 후, 블랙박스로 이동한 관객들에 섞여서 공연을 기다리며 프로그램북을 펼쳤다.

일본의 전통음악극 Noh(能)의 오리지널 텍스트 중의 하나인 Oriza Hirata(오리자 히라타)의 텍스트를 바탕으로 작곡가가 스스로 쓴 리브레토로 작곡되어 2017년 초연된 작품이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문득 Noh(能)의 <스미다 강 이야기>를 보고 영감을 받아 Benjamin Britten(벤자민 브리튼)이 작곡한 오페라 <Curlew River>(1964년)가 떠오르면서 전통음악극을 기반으로 현대적인 오페라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일본 작곡가들의 집요한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가톨릭 중세 기적극 형태의 벤자민 브리튼 오페라 <Curlew River>는 한국에서는 1국립오페라단(1977년), 서울오페라앙상블(2013년)에서 <섬진강 나루>(국립극장 달오름극장)로 번안 공연되었고 서울시오페라단이 한국 제목의 <도요새의 강>(2016년)으로 공연된 오페라이다)

가변적 무대를 기대하고 들어 선 극장 내부는 정통적인 프로세니엄 액자형태의 무대로 구성

되어 있어서 영상 기법이 집중된 무대로구나 싶으면서도 살짝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무대 하수에 앙상블 TIMF의 악기군이, 무대 상수에는 샤무엘 베케트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상케 하는 고사목 아래 바닷가를 떠오르게 하는 모래가 깔린 미니멀한 무대를 보여주고 있었다. 완창 판소리를 창자가 부르기 전에 목을 추스리듯 부르는 허두가처럼 오페라공연에 앞서 전주곡처럼 연주된 도시오 호소카와의 한국 초연곡인 <Voyage V>는 일본 전통피리인 竹笛(타케후에)의 다양한 음색을 플루트(김유빈)로 변환시킨 독특한 빛깔의 음악이 타악기를 바탕으로 하는 오늘 밤 공연의 TIMF의 연주가 어디를 항해 항해를 시작할지 더욱

궁금증을 더해 주면서 공연은 시작되었다. 막이 열리면, 전쟁의 화마가 휩쓸고 간 중동 출신의 난민인 한 여인이 모래 위에 쓰러져 있다. 멀리서는 영상을 통해 출렁이는 파도가 난파로 인해 동생을 잃은 헬렌의 심상풍경을 보여준다. 망망대해에서 표류한 난민선에 갇혀 끝내 죽은 남동생의 죽음과 고향을 등진 보트피플의 피폐한 삶을 노래하는 사이, 바다의 여인 시즈카가 파도 속에서 등장하여 떠나버린 사무라이 연인에 대한 사랑과 전쟁 중에 낳은 아들을 해저의 묻은 과정을 노래와 몸짓으로 동병상련의 마음을 표현하여 헬렌을 위로한다. 낯선 지중해 해변에서 사무라이 시대의 궁정무희라니! 운명 앞에서 고통을 겪는 헬렌과의 감정 이입 과정을 두 몸이 하나로 되는 고혹적인 영상 기법을 보여주어 그 작의적 설정을 상쇄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여인들의 비극적 동의만 있다면 굳이 무대배경이 지중해 어귀가 아니더라도 언어와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 어디라도 통용되는 음악적 언어라고 하는 작곡자와 연출자(토마스 이스라엘)의 인간과 우주의 합치라는 개념은 동서양의 결합이라는 상투적 표현을 넘어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특히 시즈카가 벚꽃이 만발한 요시노산을 가르키며 헬렌에게 산을 향하라고 하는 작별의 장면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하는 현대적 선문답식 질문의 백미였다. 그밖에 3개의 스크린을 중첩시켜 등장인물들의 움직임을 파도치는 바다와 눈 덮인 산 그리고 인간의 육체 등으로 기호화 시킨 영상적 연출은 헬렌 역의 사라 베게너의 단속적 리듬의 노래와 무브먼트를 곁들인 시즈카 역의 료코 아오키의 읊조리는 노(能) 대사 톤의 노래가 서로 조응하고 때로는 부딪히며 전쟁과 실연으로 겪는 여인의 기구한 운명을 선명하게 드러내어 주었다.

이렇듯 절제된 무대 미학과 지휘자 성시연이 이끄는 TIMF앙상블의 잘 직조된 뛰어난 앙상블이 어우러져 지나치게 몽환적이거나 그렇다고 현실적이지도 않은 두 여인의 실타래처럼 얽힌 삶을 하나로 연결시켜 보여주면서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연역적 전개 방식으로 관객들에게 묻는 매우 인상적인, 등장인물 2인으로 구성된 미니멀한 현대오페라의 정수를 보여준 것은 이번 통영음악제의 소중한 음악적 수확이었다. 콘서트 형식의 초연(2017년 12월 파리)과는 달리 관객과의 소통을 위한 장치인 영상의 지나친 과잉이 작품의 흐름을 때로는 방해하고 가변무대를 액자무대로 만들어 관객들의 몰입을 단순화 시킨 것은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렇지만 지난해 겨울, 국립오페라단의 <라보엠> 지휘로 피로감(?)을 보여준 지휘자 성시연이 이번 공연에서는 정곡을 찌르는 정확하고 탁월한 바톤 터치로 그녀의 현대음악에 대한 도전과 각별한 애정을 다시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2019통영국제음악제는 윤이상의 음악들이 많이 연주되어 음악제의 본질이 되살아났다는 반갑고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루체른심포니오케스트라의 <화염속의 천사>,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의 <유동>,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교향곡 3번>, 홍콩뉴뮤직앙상블의 <밤이여 나뉘어라> 등이 함께 공연되어 축제의 음악적 분위기를 한껏 고양시켰다. 이번 2019통영국제음악제의 예술감독인 Pronian Riem(플로리안 리임)의 임기가 올해로 종료된다고 한다.

임기가 연장되든 새로이 누가 수장을 맡든 지간에 음악제의 정체성을 살린, 윤이상의 음악정신을 기리는 통영국제음악제로 거듭나기를 기대해본다.

 

처염상정(處染常淨)!

세상의 때 묻지 않은 맑고 향기로운 연꽃이여!

음악당 뒤뜰에 모셔져 있는 윤이상 선생 묘소의 묘비명이 나지막하게

통영을 향해, 우리를 향해 말하고 있다.

 

장수동 (오페라연출가. 서울오페라앙상블 예술감독)

 

THE MOVE Press@ithemove.com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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