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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_허명현의 감성회로 찾기] 거장의 품격을 갖춘 니콜라스 안겔리치 그리고 KBS교향악단의 바그너 여정

기사승인 2018.03.08  20:3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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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교향악단 726회 정기연주회

 

바그너 탄호이저 서곡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니콜라스 안겔리치)

바그너 신들의 황혼 中 발췌

 

 

 

지난 1월 25, 26일 양일간 KBS교향악단의 726회 정기연주회가 있었다. 1부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은 니콜라스 안겔리치(Nicholas Angelich)가 협연하였다. 니콜라스 안겔리치의 연주는 시작 몇 마디 만에 그 스타일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타건은 강하지만, 긴장감 넘치는 대비를 통해 휘몰아치거나, 극적인 긴장감을 불어넣는 스타일과는 반대편에 위치한 피아니스트였다. 섬세하고 따뜻한 색채를 지닌, 흔히 말하는 전형적인 초식남의 감성을 지녔다. 우선 전반적으로 협주곡의 템포는 느렸다. 지나치게 느린 템포 설정으로 인해, 목관의 반주가 불안한 순간들이 종종 보였다. 하지만 니콜라스 안겔리치의 연주는 이 모든 점들을 무마시킬 정도로 숙달된 연주를 보여주었다. 거장들의 음악에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안정감과 품격이 느껴졌다. 얕은 수를 서서 그럴듯하게 보이려는 과장된 움직임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박자를 과하게 밀고 당기거나, 부자연스러운 다이내믹 변화 등 자극적인 조미료를 첨가하지 않았다. 그는 음악 그대로를 투명하게 반사시키며 자연스러운 음악 그 자체를 만들어나갔다.

 

특히 1악장에서 기나긴 트릴과 함께 등장하는 스케일에서는 정직할 정도로 균형 잡힌 박자를 운영했다. 이러한 기조는 이후 카덴차에서도 유지되었다. 6박자로 전환되고나서 쏟아지는 화음폭포에서도 박자의 흐트러짐 없이, 독백을 내뱉었다. 물안개 같은 화음잔향들이 어지러이 흔들리고, 뚜벅뚜벅(6박자 걸음으로) 절제된 모습으로 나아갔다. 숙달되고 안정적이었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과 더불어, 앙코르로 연주된 슈만의 Kinderszenen op.15, 쇼팽의 Mazurka no.40 에서는 니콜라스 안겔리치의 또 다른 특기를 볼 수 있었다. 슈만의 어린이 정경에서는 꿈꾸는 듯 붕 떠있는 여린 음들을 나열했다. 비록 미세하고 여린 음이었으나, 각 음들은 심지가 느껴질 정도로 단단했다. 진행하는 음들에서 명확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듣는 순간, 머릿속에는 여러 수식어가 필요 없었다. 피아니시모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번째 앙코르 쇼팽의 마주르카에서 역시 니콜라스 안겔리치의 내공이 느껴졌다. 반음계로 내려오는 그 순간, 가지런히 음향을 쌓아올리며, 떠다니는 음향들에 가지런히 질서를 잡아주었다. 음향이라는 요소는 그 특성상 실황 연주가 아니고서는 포착하기가 정말 힘들다. 그렇기에 연주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던 실황만의 순간이 탄생했다. 그리고 2부에서는 이 날 프로그램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바그너가 연주되었다. 이날 신들의 황혼 중 발췌된 부분은 Siegfried’s Rhinejourney, Interlude:“Hagen summons The vassals”, Song of the Rhinedaughters, Siegfried’s Death & Funeral March, Immolation Scene 이었다. 요엘 레비의 바그너는 선율을 이어 모으고 또 상승시키고, 조성의 변화를 활용한 극적인 전개를 시도하는 그런 바그너는 아니었다. 특히 탄호이저 서곡에서는 휘어지거나 특별한 굴곡 없이 쭉쭉 늘어지는 모습들이 그랬다. 그렇기에 바그너 특유의 가슴 찌릿한 맛은 덜했다. 음악을 만드는데, 유려한 선의 흐름보다는 조각조각 분절해 제시해 흐름이 툭툭 끊겼다. 취향이 맞지 않으면 음악으로만 마음을 움직이기에 쉽지 않은 바그너감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BS교향악단이 뽑아내는 바그너사운드에 감동했고, 이들의 저력에 놀랐다. 지휘자가 만들어 내는 음악과는 별도로 악단자체가 가진 역량을 볼 수 있었다. 악장의 리드도 대단했지만, 금관, 목관 등 바그너 소리를 만드는데 큰 부족함이 없었다.

사실 바그너에서의 호른 앙상블, 총주때의 악기 간 밸런스 등과 같은 요소들은 지구에서 몇몇 악단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악단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영역이다. 하지만 자신의 모티브를 정확히 연주하는 날렵한 트럼펫, 안정적인 트럼본 등등 금관군은 그 존재감을 과시하며, 자기 목소리를 충분히 냈다. 이에 목관들도 가세해, 모티프들이 적절히 떠다니고 섞였다. 특히 이날은 클라리넷 객원수석인 알렉산더 피터슈타인이 바그너 여정에 동참했다. 너무 밝지 않고, 적당히 어두운 조명의 바그너 사운드를 만들어 냈다. 이번 연주의 일등 공신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바그너를 제대로 연주할 악단은 손에 꼽는다. 하지만 바그너가 태어난 곳과는 멀리 떨어진 이 극동아시아에서, 이 정도의 퀄리티를 가진 바그너 사운드를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은 꽤 행복한 일이다. 앞으로도 KBS교향악단은 글라주노프의 교향곡, 브리튼의 전쟁레퀴엠 등 도전을 이어 간다. 이들의 의욕 넘치는 레퍼토리가 더욱더 기대된다.

 

허명현(음악칼럼니스트)

 

THE MOVE Press@ithemove.com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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