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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명현의 감성회로 찾기] 어둠 속 꿈틀대는 색채들, 낭만을 노래하는 영국남자들

기사승인 2018.04.10  20:2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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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향 정기공연: 올해의 음악가 이안 보스트리지 ⓵,⓶

Debussy, Trois Nocturnes

Britten, Nocturne for tenor, 7 instruments and strings, Op. 60

Holst, The Planets Op. 32

 

 

이번 서울시향 정기공연의 가장 큰 특징은 영국남자들의 음악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휘자 마이클 프랜시스,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 그리고 영국이 자랑하는 작곡가들인 브리튼, 홀스트까지 무대에 오른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특징은 어둠속에서 꿈틀대는 음악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밤의 음악들이다. 1부는 드뷔시 ‘세 개의 녹턴’ 으로 시작했다. 극도로 여린 클라리넷의 도입부가 유려했다. 무대를 출발한 소리들은, 적당한 세기로 콘서트홀을 유영했다. 불이 꺼져 어둡던 콘서트홀에 밝게 피어오르는 듯 한 목관은 이날 공연의 기대치를 한껏 끌어 올렸다. 맞추기 까다로운 드뷔시의 정교한 앙상블을 기대이상으로 만들어 냈다. ‘축제’에 이르러서도 복잡한 박자 진행들을 말끔히 진행해 나갔다. 지휘자의 솜씨가 드러난 대목이었다. 하늘 높이 터지는 불꽃들을 보듯, 어두운 하늘은 알록달록 다양한 색깔로 범위를 넓혀갔다. 원근감을 두듯 민첩하게 세기를 변화시켜 때로는 까까이서, 때로는 멀리서 축제를 바라보았다. 마지막 ‘사이렌’ 에서는 합창 파트가 조금 아쉬움을 보였다. 짧은 구간에서 정교하지 못했던 크레셴도 등 세밀한 표현이 부족했다. 그리고 소프라노와 메조소프라노가 서로 이어받는 부분 역시 매끄럽지 못하고, 다소 거칠었다. 이후 브리튼의 테너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녹턴이 한국 초연 되었다. 밤을 주제로 한 시들을 가져와 시리즈로 묶었다. 이안 보스트리지는 브리튼이 표현하려는 위협적이고 불안정한 밤을 표현해 내려 시도했다. 분명 엄청난 미성을 소유하고 있고, 세밀한 딕션 처리와 다양한 감성을 노래했다. 다만 이안 보스트리지가 감기에 걸려, 목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는 점은 아쉬웠다. 본인의 원래 기량을 전부 발휘하기 힘들었고, 중간 중간 기침하는 모습도 보였다. 불안정한 고음처리는 그가 노래했던 불안정한 밤만큼이나 위태로워 보였다. 결국 완전한 기량의 이안 보스트리지는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2018년 서울시향 ‘올해의 음악가’ 이기 때문이다. 기회는 더 있다.

2부는 홀스트의 행성이었다. 서양음악사상 가장 큰 물리적 실체를 다루는 작품이라고도 볼 수 있다. 물론 홀스트가 전적으로 행성들을 염두하고 쓴 작품들은 아니다. 실제 행성들의 특징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과학적인 고증절차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작품이다. 일례로 수성은 위트 있고 즐거운 음악으로 표현되지만, 실제로는 대기가 희박해 살인적인 일교차를 보여주는 아주 위험천만한 곳이다. 하지만 이날 관객들은, 어둠속 빛나는 행성들을 즐겁게 여행했을 것이다. 악기 간 완전한 밸런스의 연주는 아니었기 때문에, 행성들의 해상도가 아주 높지는 않았다. 하지만 즐거운 여행이 되기에는 충분한 연주였다. 마음속에 가진 행성들의 심상을 충분히 떠올렸을 것이다. 화성(Mars)부터 여행은 시작되었다. 기체가 흔들리듯, 격렬한 리듬 속에서 밸런스 컨트롤이 쉽지 않았다. 다소 불안정한 시작을 보였다. 하지만 이내 앙상블을 가다듬고,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금성(Venus)에 이르러서는 첼로 객원수석으로 참여한 첼리스트 심준호의 연주가 돋보였다. 아주 간결하고 풍부한 선율로 서정성을 더했다. 느긋하게 스쳐지나갈 뻔한 화성을 한번 더 바라봐야할 이유를 만들어 주었다. 해왕성(Neptune)에서는, 조용히 멀리서 들려오는 합창단의 소리를 무대 밖 소리로 처리했다. 앞선 드뷔시에서의 합창보다는 조금 더 세밀해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마지막으로 해왕성을 여행한 후, 태양계에서 점점 멀어지듯, 열어둔 문이 조금씩 닫히면서 합창단의 목소리가 서서히 사라져 갔다. 점점 소리가 작아진다는 ‘청각적’ 속성이 서서히 닫히는 문이라는 ‘시각적’ 속성과 연결되었다. 이는 뜻밖의 새로운 심상을 만들어 냈다.

홀스트의 ‘행성’이 모두 끝나고, 앙코르 없이 연주회는 모두 끝났다. 무대의 효과를 위해서는 역시 앙코르가 없는 편이 나았다. 홀스트가 우주 차원의 이야기를 던졌기 때문에, 앙코르로 연주될 대상은 그저 미시적인 존재가 될 것이 분명하다. 드뷔시의 ‘바다’ 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알프스’와 비교할지라도, 우주에 비하면 한없이 작은 물리적 실체다. 행성을 둘러싸고, 복잡한 명왕성의 이야기가 남아있지만, 홀스트가 작곡한 행성은 해왕성(Neptune)을 막 지나가며 끝났다. 그리고 실제로 보이저 1호가 해왕성을 지나, 지구를 떠난 지 40년 만에 막 태양계를 벗어났다. 이제 태양계를 넘어 외계로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다음으로 만나게 될 천체는 태양계를 둘러싸고 있는 ‘오르트 구름’이 될 것이다. 과학발전에 힘입어, 인간의 인지 영역이 무한히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홀스트가 그랬듯이, 또다시 후대의 예술가들은 끊임없이 어둠속 꿈틀대는 빛을 보며 낭만을 그릴 것이다.

 

허명현(음악칼럼니스트)

 

THE MOVE Press@ithemove.com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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