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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매개로 다른 차원을 열어줄 음악들

기사승인 2019.07.18  05:4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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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향 마르쿠스 슈텐츠 & 베조드 압두라이모프

허명현의 감성회로찾기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연초 서울시향과 함께 했던 마르쿠스 슈텐츠가 6월 다시 지휘봉을 잡았다. 마르쿠스 슈텐츠는 지금껏 서울시향과 가장 호흡이 좋았던 지휘자 중 하나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공연 역시 마르쿠스 슈텐츠의 활약으로 곡들은 활기를 찾았다. 특히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2부의 곡들이 무대에서 형상화되었다는데 이번 공연의 의의가 있었다. 동시대를 살았으나 전혀 다른 예술세계를 가진 두 작곡가, 라흐마니노프와 스크리아빈이 한 무대에서 나란히 연주되었다.

공통적으로는 두 곡이 모두 마음 속에 떠오르는 심상을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라흐마니노프가 실재적이고 이미지화 가능한 분위기를 그렸다면, 스크리아빈은 말 그대로 추상적인 관념속의 세계를 곡에 녹여냈다.

마르쿠스 슈텐츠는 이 포인트를 정확히 알고 두 곡을 대비했다. 논리적인 이야기 구조보다는 오케스트레이션이 주는 효과와 분위기에 더욱 치중했다. 라흐마니노프에서 두드려졌는데 슈텐츠는 어두운 사운드를 바탕으로 때로는 위협적으로 큰 스케일을 그려냈다. 두 곡 전부 서울시향 단원들이 많이 연주해보지 않은 작품이라, 종종 소리들이 뭉치고 엉키는 부분들이 있었다. 특히 스크리아빈 교향곡에서 그런 경향이 보였다. 게다가 이 4번 교향곡은 트럼펫을 비롯한 금관들이 선이 길고 호흡이 긴 대목들을 주기적으로 연주해야 하기 때문에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더욱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관객들은 충분히 그의 정신세계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공연장을 집어 삼킬만한 강력한 사운드와 함께 곡이 끝났고, 그때 쯤 이른 곳은 이미 지상의 공간이 아니었다. 소리를 매개로 다른 차원으로 전이되는 놀라운 순간이 펼쳐졌다.

 

돌아온 베조드 압두라이모프! 그리고 화려했던 2부에 조금은 가려졌지만, 1부 베조드 압두라이모프의 연주도 눈여겨 볼만했다. 베조드 압두라이모프는 2017년 서울시향과는 이미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 당시 아주 기술적이고 동시에 이지적인 프로코피에프 협주곡을 연주하면서,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번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도 관객들이 기대한 그 이상을 보여주었다.

 

1악장이 시작하면서 나타난 화음들에서도 이 피아니스트가 기본적으로 가진 힘이 대단함을 알 수 있었다. 또 화음의 울림이 굉장히 균형 잡히고 정제되어, 단순히 힘만으로 이 도입부를 연주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철저히 계산에 의한 힘으로 도입부를 시작했다. 1악장에서는 마찬가지로 음량을 몇 단계씩 나누어 조절했다. 다음에 나올 패시지를 위해 의도적으로 음량을 줄이고, 다시 확장시키며 효과적으로 다이나믹을 구현했다. 덕분에 관객들은 아주 생기있고 흥미로운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을 들을 수 있었다.

이는 2017년 당시 관객들이 베조드 압두라이모프에 열광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3악장까지 유지되는 텐션은 이 피아니스트가 얼마나 대단한 스태미너를 가지고 있는지 알게 해주었다. 집중력을 잃지 않고 끝없이 이어지는 노트들을 명쾌하게 처리해 나갔다. 게다가 슈텐츠 특유의 박진감 넘치는 드라이브로 곡은 더욱 고조되어 갔다. 서울시향의 반주는 조금 아쉬웠는데, 목관과 피아노가 주고받는 부분에서 특히 약점이 노출되었다. 피아노와 밸런스를 이룰 만큼의 소리가 뻗어 나오지 못했다.

그럼에도 슈텐츠와 압두라이모프의 시너지로, 피날레까지 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음표들의 각축장이었다. 본 공연이 모두 끝나고 관객들은 환호하며 솔직한 반응을 그대로 내보였다. 앙코르로 이어진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 역시 모든 것이 설계된 정교한 연주를 선보였다. 단순히 세게 치는 것보다 완급을 조절하며 연주하는 것은 에너지가 배로 소모되는데, 압두라이모프는 지치지 않고 텐션을 유지했다. 잘 세공된 리스트였다. 좋은 피아니스트가 갖춰야 할 대부분의 속성을 가진 이 연주자는 도무지 90년생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상반기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슈텐츠와 서울시향은 다시 한번 호연을 펼쳤다. 비슷한 시기의 러시아 작품들로만 구성된 공연 자체도 흥미로웠고, 지휘자에 따라 그 색깔이 확연히 달라진다는 사실을 입증한 공연이기도 했다. 이제 하반기 마르쿠스 슈텐츠와 서울시향이 다시 함께 하게 될 작품은 정통 독일 레퍼토리인 바그너와 베토벤이다.

 

허명현(음악 칼럼니스트)

 

THE MOVE Press@ithemove.com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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