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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스스로를 가둬 버린 천재 피아니스트_이보 포고렐리치

기사승인 2020.04.21  14:4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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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보 포고렐리치 리사이틀

15년 만에 이보 포고렐리치(Ivo Pogorelić, 크로아티아, 1958~ )가 한국을 찾았다.(2020.2.19 롯데콘서트홀)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취소가 되는 건 아닌지 팬들의 우려를 모았던 공연이다.

전성기의 포고렐리치는 가공할만한 흡인력을 가진 연주자였다. 극한까지 조절 가능한 아고긱스(agogics)는 천재들만이 구현할 수 있는 것이었고, 움직이지 않는 음들은 공명했다. 20세기에는 더 이상 나올 수 없을 것만 같던 루바토(rubato 템포, 리듬을 변화시키는 기법)였다. 모든 아티큘레이션이 특별했고, 그의 손끝에서만 가능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가히 메피스토라고 붙일 법한 그런 피아니즘이었다. 굉장한 테크닉은 물론, 범인은 상상도 못할 감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는지 쇼팽 콩쿠르는 포고렐리치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를 인정하는 순간 나머지 음악들을 모두 처음부터 재평가했어야 했기에.

 

하지만 이날 공연에선 그런 악마적인 흡인력을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는 더 이상 메피스토펠레스가 아니었다. 물론 중간 중간 대가의 것으로 보이는 번뜩이는 기술들을 발견하긴 했지만, 예상대로 발굴의 영역이었다. 깊숙이 찾아 나서야만 보였다. 나이가 들면서 찾아오는 기술적인 문제는 아니었다. 사실 기술적인 퇴화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차라리 포고렐리치도 그런 노화를 맞았다면 좋았을텐데, 본능적인 직관과 톤에 대한 감각이 많이 무뎌졌다. 혹은 음악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과연 관객들을 위한 음악이었을까?

그리고 마침내 곡이 해체되기 시작했다. 얼마 전 플레트네프의 리사이틀이 연상되었다. 겉보기엔 비슷한 양상으로 곡이 흘러갔기 때문이다. 플레트네프는 곡이 해체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아슬아슬하게 선을 지켜 새로운 차원의 아름다움을 만들었다. 반면 포고렐리치는 넘지 말아야할 선을 결국 넘어버렸다. 노래는 수시로 멈췄고, 해체되어 떨어져 나온 파편들이 무대에 나뒹굴었다. 파편들을 바라보며 원래의 모습을 유추하기란 불가능 했다. 포고렐리치는 그야말로 스스로를 위해 연주하고 있었다.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는 가장 인상적이었다. 또 그의 복잡한 내면을 비추는 거울 같았다. ‘르 지베(Le Gibet 교수대)’에서는 무심함으로 철저히 무장한 비극성이 드러났다. 그리고 공허했다. 이날의 공연 중 가장 설득력 있고 예술적인 연주이기도 했지만, 르 지베 이후 공연장은 가라앉았다. 포고렐리치가 설정한 무서울 정도의 거리감은 공허함을 만들었다. 가족사를 겪고 연주력이 퇴보한 치프라가 불현 듯 떠올랐다. 물론 '비극적인 천재' 라는 타이틀에 사로잡히면 안된다. 그의 음악을 이해하는 키(key)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존경해왔던 아내와의 사별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은 그에게 꽤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그 시점 이후 그의 음악이 급격하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간단하게는 다시 듣고 싶은 연주와 그렇지 않은 연주로 구분해 공연을 정리할 수 있다. 이 날 포고렐리치의 연주는 분류가 어려워 보인다. 아무래도 그가 다른 세상을 찾아 나서고, 또 새로운 음악을 만들고 있을 때 쯤, 아무래도 그때 쯤 그의 연주를 다시 만나야 할 것 같다.

 

허명현(음악칼럼니스트)

 

 

*아고긱스(agogics): 연주를 하는데 있어서의 템포(속도) 표현법

*루바토(rubato): 템포, 리듬을 변화시키는 기법

*아티큘레이션(Articulation): '명료한 발음'이란 뜻으로, 음악에서는 연속되고 있는 선율을 보 다 작은 단위로 구분하여 각각의 단위에 어떤 형과 의미를 부여하는 연주기법

 

 

THE MOVE Press@ithemove.com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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