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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열-윤호근 듀오콘서트: 슈베르트, <겨울나그네>

기사승인 2022.02.18  05:5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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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스 한혜열과 지휘자 윤호근이 선보이는 두 번째 가곡 무대

겨울의 끝자락에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연가곡 <겨울나그네>(Winterreise, op. 89, D. 911, 1827)가 연주된다.  

베이스 한혜열과 지휘자 윤호근이 합심하여 선보이는 두 번째 무대는 슈베르트의 두 번째 연가곡 <겨울나그네>로, 3월 19일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열린다.

 2021년 4월,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Die schöne Müllerin, op. 25, D. 795, 1823)로 첫 듀오콘서트를 마련한 두 사람은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시기에 묵직하고 따뜻한 목소리와 생동감 있는 연주로  위로를 건넨 바 있다. 불안한 내면을 지닌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청년으로 분한 베이스 한혜열은 윤호근의 피아노를 만나, 절제하면서도 세밀한 표현으로 음악을 전달하는 ‘리트가수’로서의 재능을 마음껏 뽐냈다.

   1년 만에 다시 뭉친 이들이 준비한 무대는 슈베르트의 두 번째 연가곡 <겨울나그네>(Winterreise, op. 89, D. 911, 1827)로 청춘의 비극과 서정을 담아낸 전작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에 비해, <겨울나그네>는 방랑의 길에서 겪는 고통과 절망, 죽음에 대한 상념으로 한층 더 깊은 우울과 어두운 정서를 깔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고통과 절망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기력과 용기, 희망의 메시지를 은연 중에 전하는 이 곡은 그만큼 연주하기 까다로운 작품이기도 하다. 1년 동안 더욱 성숙해진 한혜열의 목소리와 음악을 이끌어가는 윤호근의 피아노, 이들 듀오가 어떤 해석을 들려줄지 무척이나 기대된다.

겨울 밤 홀로 쓸쓸히 방랑의 길을 떠나는 <겨울나그네>, 끝이 보이지 않는 역병과의 사투에 지친 음악애호가들에게 3월, 겨울의 끝자락에서 쌀쌀한 초봄을 기꺼이 맞이하며 매력적인 슈베르트의 음악 속으로 빠져 들어가 보는 건 어떨까.

3.19  8pm.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

 

Franz Peter Schubert

 

 

연가곡(Liederzyklus)의 미학

노래는 사람들의 삶에 항상 함께 했다. 중세 시대부터 트루바두르, 트루베르, 민네징어, 마이스터징어와 같은 음유시인들이 노래로 감정과 정서를 표현해왔지만, 현대적인 의미에서 가곡이 탄생된 것은 18세기 중엽 이후였다. 흥미로운 것은 가곡이라는 새로운 예술 장르를 주도했던 도시가 파리도, 빈도 아닌 북독일의 도시 베를린이었다는 점이다. 크반츠, C.P.E. 바흐, 슐처, 슈바르트, 그라운 등 베를린 노래악파(Berliner Liederschule)는 고전시대를 여는 시인이자 예술사상가인 헤르더(Johann Gottfried Herder, 1744-1803)와 마찬가지로 가장 자연스러우면서도 인간적인 민요(Volkslied)를 음악의 근본으로 보고 작곡의 표본으로 삼았다.

   음악사에서 가곡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괴테(Johann Wolfgang Goethe, 1749-1832)는 “시는 작곡을 통해 마침내 완전해 진다”고 보았고, “음악이야말로 그 추상성, 비대상성으로 인하여 예술의 가치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모든 것을 높이고 고상하게 만든다”고 평하였다. 비록 자신의 시에 곡을 붙여 가곡을 만든 슈베르트의 재능과 음악성은 전혀 알아보지 못했지만 말이다. 누구나 이해 가능한 보편적 이성이 중시된 고전주의를 지나,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감정의 세계인 낭만주의가 도래하면서, 19세기는 가곡의 시대가 되었다. 그것도 오케스트라의 음색을 혼자서 두루 낼 수 있는 악기 피아노가 발명되고 개량되면서, 단순한 노래 대신 가사의 내용과 의미를 피아노, 즉 음악이 주도하는 ‘예술가곡’(Kunstlied)이 대세가 된 것이다.

   연가곡은 텍스트의 내용에 서술적 연계성이 있거나 같은 주제와 분위기를 지닌 일련의 연작 시를 바탕으로 작곡된 예술가곡의 특별한 한 형태이다. 베토벤이 <멀리 있는 연인에게>(An die ferne Geliebte, 1816)를 발표한 이후, 19세기의 많은 작곡가들이 이 장르에 관심을 가지고 뛰어 들었다. 제일 잘 알려진 작품으로는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Die schöne Müllerin, 1823)와 <겨울나그네>(Winterreise, 1827)를 꼽을 수 있으며, 슈만의 작품으로는 <여인의 사랑과 생애>(Frauenliebe und -leben, 1830), <시인의 사랑>(Dichterliebe, 1840), 하이네와 아이헨도르프의 시를 가지고 각각 작곡한 <리더크라이스>(Liederkreis, 1840/1840-1842)를 들 수 있다. 이외에도 브람스, 휴고 볼프, 무소르그스키, 드뷔시, 말러 등 많은 19세기 작곡가들이 연가곡을 작곡하였다.

   그렇다면, 연가곡의 매력은 무엇일까? 한 시인의 연작시인 경우 내용상 이미 내적으로 강력한 연관관계가 형성되어 있어 마치 하나의 긴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을 청중에게 전한다. 하나의 단편 시를 텍스트로 하는 개별 가곡보다 훨씬 긴 호흡으로 이야기의 발단과 전개, 절정과 해소를 경험하며, 화자의 감정과 정서를 깊숙이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여러 편의 시를 각기 다른 편에서 발췌한 경우 서술적 연관성을 떨어지지만, 이때 음악의 역할은 더 중요해진다. 가장 작은 음악적 단위인 모티브와 멜로디를 개별 곡들에서 활용함으로써, 미약한 내용적 연결고리 대신 강력한 음악적 통일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혹은 각 곡들 간의 조성 관계를 통해 텍스트의 내용을 심화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와 <겨울나그네>의 마지막은 처음 시작할 때의 조성과 완전히 달라져 있는데, 이는 주인공이 다시 돌아갈 수 없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연가곡의 매력은 화자의 강렬한 감정이 하나의 극적 틀 속에서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는 점이며, 이때 음악의 역할은 시를 보조하는 수단을 넘어 가사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정서와 분위기를 끌어내고 극적 의미를 강화하는 본질로 작동한다.

 

<겨울나그네>(Winterreise, op. 89, D. 911, 1827)

슈베르트의 두 번째 연가곡 <겨울나그네>는 1827년 그의 나이 서른 살에 작곡되었다. 4년 전인 1823년 슈베르트는 독일 시인 빌헬름 뮐러(Wilhelm Müller, 1794-1827)가 1816년에 발표한 시집에서 발췌한 시들로 구성한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 작곡에 몰두하고 있었고, 뮐러는 24개의 시로 구성된 연작시 <겨울나그네>를 막 완성하였다. 동년배인데다 내성적이면서 낭만적인 감성을 지닌 뮐러의 시에 깊이 공감한 슈베르트는 자신의 두 번째 연가곡 역시 그의 시를 바탕으로 만들고자 결심하였고, 1827년 2월에 12개, 그해 10월에 나머지 12개의 시에 곡을 붙여 마침내  <겨울나그네>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불행히도 슈베르트는 <겨울나그네>의 생전에 악보 출판과 초연을 보지 못했다. 작곡가가 사망한지 6주 후인 1828년 12월에 악보가 출간되었고, 1828년 1월에는 1번만, 1829년 1월에는 5번과 7번만 연주되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가 사랑에 실패한 청년의 자살로 끝을 맺음으로써 청춘의 비극과 서정을 담아냈다면, <겨울나그네>는 실연당한 청년이 방랑의 길을 떠나면서 마주치는 고통과 절망, 죽음에 대한 상념이 주를 이룬다.

전작에 비해 한층 더 깊은 우울과 어두운 정서가 지배적이다. 사랑의 열병을 앓고 마음의 상처를 입은 한 청년이 눈보라 치는 어느 겨울 밤, 사랑했던 여인의 집 대문 앞에서 작별의 인사를 고하고 방랑의 길을 떠난다. 그가 마주한 건 오로지 싸늘한 겨울바람 뿐, 보리수 그날 아래서 단꿈을 꾸지만 이내 현실로 돌아오고 도깨비불을 쫓기도 하고 빈 오두막에서 휴식을 취하기도 하지만 마음은 괴롭기만 하다. 봄날의 꿈으로 사랑을 회상하지만 여전히 고독하고, 죽음까지 한참 남은 젊음에 고통스럽다. 그러나 지친 나그네에게 살아갈 기력과 용기가 생기고, 청년은 어쩐지 자신의 고독함과 닮아 있는 거리의 늙은 악사에게 함께 떠나자고 손을 내민다.

<겨울나그네>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니까 이 곡은 단순히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상실감과 실연의 고통을 드러내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상실과 고통의 절망감이 한 줄기 가느다랗지만 뚜렷한 희망의 메시지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함을 노래한다. 전세계적으로 유행하는 현대판 역병에 모두가 시달리는 이때, 연주회장에서 혹은 여러 매체에서 <겨울나그네>의 친숙한 선율이 자주 들려오는 건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슈베르트의 선율은 청년이 부여잡고 있는 실연의 아픔을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피아노는 텍스트를 보완하기도 벗어나기도 하면서 시적 화자와 음악을 듣는 청자 모두를 사로잡는다.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던 상황에서 작곡가로서 크게 인정받지 못한 괴로움을 지닌 슈베르트가 죽기 1년 전에 완성한 이 곡에는 실연의 괴로움, 실낱같은 희망, 죽음에 대한 갈망이 온통 뒤섞여있다. 그래서인지 독일어 제목을 그대로 직역한 <겨울여행> 보다 겨울 밤 홀로 쓸쓸히 방랑의 길을 떠나는 <겨울나그네>가 더 어울린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쌀쌀한 초봄을 기꺼이 맞이하며 매력적인 슈베르트의 음악 속으로 빠져 들어가 보는 건 어떨지…

 

 

photo by 최원일

베이스 한혜열

 

베이스 한혜열은 독일 데트몰트 국립음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이후 데트몰트 극장에서 솔리스트로 활동하였다. 이태리 루비니 오페라페스티벌, 영국 에딘버러 페스티벌 등에 초청되어 전세계적으로 공연한 바 있으며, 카푸칠리 국제콩쿠르, 루비니 오페라콩쿠르, 마리아밀브란 콩쿠르, 일본오사카 국제음악콩쿠르 등에서 입상하였고, 국내에서는 중앙음악콩쿠르, 엄정행성악콩쿠르, 대구성악콩쿠르, 이화경향음악콩쿠르, 난파 콩쿠르 등 여러 경연대회에서 상을 수상하였다. 2018년 귀국하여 서울시오페라단 <아말과 동방박사들>에서 얼굴을 알리기 시작하여 국립오페라단 <마술피리>(2019), 대구오페라하우스 <리골레토>(2019), 광주시오페라단 <박하사탕>(2020)에 출연하며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현재 한세대학교와 가톨릭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피아노 윤호근

 

지휘자 윤호근은 독일 만하임 국립음대에서 관현악, 합창지휘, 실내악, 가곡 반주를 전 과정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하였다. 독일 기센 시립극장과 프랑크푸르트 시립극장에서 재직하였으며, 이후 베를린 슈타츠오퍼(Staatsoper Berlin)의 음악감독 다니엘 바렌보임의 어시스턴트로 발탁되어 활동하였다. 사이먼 래틀, 주빈 메타, 키릴 페트렌코 등과도 함께 여러차례 제작에 참여한 바 있다. 2018년 귀국하여 12대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을 역임하였다. 국내외에서 <마술피리>, <라 트라비아타>, <라보엠> 등 오페라의 주요 레퍼토리를 지휘하였으며, 특히 최우정의 오페라 <달이 물로 걸어오듯> 초연 지휘, 오페라 <1945> 기획 등 한국 오페라를 발굴하고 알리는 일에 힘쓰고 있다.

 

해설 강지영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 이론전공 및 동 대학원 음악학과를 졸업하고, 독일로 건너가 베를린예술대학(UdK)에서 박사 학위(Ph.D)를 취득하였다. 서울대, 부산대, 서울시립대, 추계예대에서 강의하면서 국립오페라단, 서울시향, 부천필 등에 종종 글을 기고하고 있고, 가끔 연주회 해설과 진행을 하기도 한다.

 

강영우 기자 press@ithemove.com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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