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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 뽑은 요즘 노래⓼ _이정표의 <황성옛터

기사승인 2019.10.23  15: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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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의 예인(藝人)을 오마주하다

 

싱어송라이터 이정표의 노래로 <황성옛터>를 꼽다니~~ 좀 조심스러운가? 이 곡을 고르기까지 그동안 그녀가 집요하게 도전해온 다양한 노래 창작의 살펴보면 아주 조심스런 선곡이긴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황성옛터>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지 않으니 우선 그녀의 음악 얘기를 <황성옛터> 얘기부터 시작해야겠다.

2018년 6월. 국악방송 프로그램 <음악의 교차로>에서 이정표의 <황성옛터>를 처음 들었다.

놀랍기도, 재밌기도, 웃음이 나기도 한 순간이었다.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의 설운 회포를 말하여 주노나

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 잠 못 이뤄

구슬픈 벌레 소리에 말없이 눈물져요

 

아는 노래이긴 하나 굳이 다시 들어볼 일 없었던 이 노래를 이정표의 매력 넘치는 목소리로 들으며, 어쩌면 100년 전 노래가 바로 ‘오늘 노래’가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년 사이에 문화계 동향의 주요 키워드로 급부상한 ‘레트로(retro)’라는 말이 떠올랐고,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주인공처럼 100년 전의 신여성 차림으로 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 이 노래가 유행하던 시절의 옛날 극장과 25현 가야금 연주에 맞춰 노래하는 오늘의 무대가 빠르게 교차되었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방송에서 부른 노래를 페이스북에 링크를 걸었더니 ‘하루에도 몇 번 들을 만큼 중독성 있다’는 찬사부터 이정표의 음색과 창법까지 귀 기울여 듣고 격려하는 전문가의 의견, 공연이나 방송, 음반에서 다시 듣고 싶다는 희망적인 호평이 이어졌다. ‘어떻게 그런 목소리로 그렇게 부르느냐’는 놀라움도 있었다.

놀라움의 이면이 궁금했다, 그냥 한번 방송에서 불러 본 노래라기에는 100년 전 창법의 내공이 만만찮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이미 100년전 대중음악계 여류 스타 22명의 창법을 하나하나 파헤쳐, 서양성악발성으로 노래한 가수는 안명옥 등 아무아무이고, 왕수복, 이류색, 박부용은 민요조 창법으로 노래를 불렀고, 윤심덕, 복혜숙은 민요적 느낌이 없었으며, 선우일선과 이난영은 노래에 따라 가창법에 변화를 주는 가수였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 그녀가 석사학위논문으로 제출한 “일제강점기 대중가수들의 가창법 비교연구”(2012)는 <황성옛터> 외에 다른 노래들도 놀랍고 재밌게 불러줄 것이라는 믿음을 주었다.

이정표의 <황성옛터>를 들으며 ‘어쩌면 이렇게 부를 수 있지?’ 슬몃슬몃 웃음 짓게 되던 비밀도 좀 풀렸다. 이 노래를 처음 불렀던 이애리수(1911-2009)처럼 ‘거침없이 자연스럽게, 지나친 청승대신 담담하게, 가사 발음은 가급적 뒤집어 밝고 과장되게 내뱉으며’ 부르는 게 한없이 신통해서 나오는 웃음이었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다. 이정표는 이 노래를 부르며 일제강점기의 애환과 슬픔을 환기시키는 대신, 그 시대를 탐색하는 시간여행자의 감성으로 시대의 예인들을 오마주했다. 황성옛터는 <황성(荒城)의 적(跡)」>이라는 제목으로 1932년에 빅터 음반으로 출시되었다. 노랫말은 왕평(본명: 이응호)이, 곡은 개성 출신의 음악가 전수린(본명: 전수남)이 썼다. 바이올린연주자이자 작곡자였던 전수린이 서울에서 음악활동을 하던 중 고향에 갔을 때 밝은 달 아래 스러진 만월대를 바라보며 역사의 무상함을 느껴 즉석에서 만들었다는 얘기가 전한다. 이 노래는 맨 처음 신파극을 하던 단성사의 막간 무대에서 이애리수의 노래로 첫 선을 보였는데, 단박에 대중들의 열화와 같은 인기를 얻어 1932년에 빅터 음반으로 발매되었다. 이애리수가 이 노래를 부르면 모든 이들이 다 같이 부를 정도의 국민가요가 되어가자 일제는 민족정서를 자극한다는 이유로 이 노래를 금지시키기도 했다. 1930년대, 나라를 잃은 한 음악가가 스러진 고려 오백년의 역사를 추억하며 즉석에서 만든 노래, 이 슬픈 노래를 밝고 담박한 기운을 담아 나라 잃은 시대의 백성들을 위로한 노래 <황성옛터>가 오늘 이정표의 25현야금연주와 노래로 우리 곁에 다시 왔다. 노래의 옛 시대를 깊이, 바로 보고 그 노래에 오늘을 담아낸 소중한 결실이다.

이정표는 1년 전 이맘때 <황성옛터>를 부른 뒤, 그동안 연구한 일제 강점기와 시대의 노래들을 다시 들춰내어 열 두곡을 가려 뽑았다. 그리고 모두 스스로 편곡하고 25현가야금을 연주하며 <경성살롱>이라는 음반을 냈다. 이 음반에는 <황성옛터> 외에 놀라며, 웃음지으며 들어볼 노래들이 수두룩하다. 무용가 최승희가 불렀다 해서 유명한 <이태리정원>도 좋고, 이난영 만큼 매력적인 <목포의 눈물>도 좋고, 명랑 쾌활하게 부르는 <바다의 꿈>도 좋다. 가야금연주하는 싱어송라이터 이정표가 시대를 소환하는 법, 레트로 감성 코드가 좀 더 많은 이들에게 다가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녀의 음반 출시를 축하한다.

 

<송혜진,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교수>

 

https://www.youtube.com/watch?v=Huxv0KlufYA

 

 

 

THE MOVE Press@ithem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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