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비와 기녀의 은밀하고 격조 높은 찐한 연애 이야기가 노래로~
찐한 연애 이야기로 기억되는 매력적인 노래 <찬비가>를 앙상블 시나위와 이봉근의 노래로 듣는다. 가사를 헤아리기도 전에 음악 분위기에 반한 이들이 많아, 한 동안 자주 불렸던 노래다. 앙상블 시나위가 <영혼을 위한 카덴자> 음반을 내며 한참 활동할 무렵, 판소리 잘하고, 인물치레도 출중한 이봉근이 앙상블 시나위와 함께 <눈먼 사랑>과 <찬비가>를 부르는 무대에서는 언제나 ‘최고다~~’라는 환호가 터졌다. 아쟁연주가 신현식을 탐구하는 중에 다시 듣게 된 앙상블 시나위의 음악은 여전히 대단하고, 이 때 나온 노래의 매력이 마력처럼 느껴진다. 지나치게 몰입한 탓만은 아닐 것이다. 노랫말은 선비와 기녀의 은밀하고 격조 높은 대화체 시조라 알려져 있다.
너.. 이름 찬우라며? 찬비?
오늘 맑은 날이라기에 우산도 없이 나왔는데.. 아무래도 오늘은 찬비좀 맞고 싶다.
추워서 얼어죽더라도 말이야.
응? 왜 얼어 죽어,
이부자리 따뜻한데.
내가 다 녹여줄게.
노랫말을 풀어보면 대략 이런 뜻이다. 은밀하기는커녕 스스럼 없는 ‘직구’ 아닌가? 그럼에도 이런 대화체 시조는 조선 이후 지금까지 낭만적인 연애 노래라는 찬사를 받으며 애창되어왔다. 남자가 말한다. “북천이 맑다 커늘 우장없이 길을 나니/ 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로다/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얼어 잘까 하노라’”. 이런 프로포즈를 받은 여자는 이렇게 답한다. “어이 얼어자리 무슨 일 얼어자리/ 원앙침 비취금을 어데 두고 얼어자리./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녹아 잘까 하노라,” 사랑에 빠진 남자는 조선의 풍류객으로 이름 높았던 백호(白湖) 임제(林悌: 1549-1587)이고, 여자는 평양 기생 한우다.
선비와 기생의 연애담으로 손꼽히는 이 두 편의 시조는 작곡가 김기수가 국악 시창교재라 할 수 있는 <고가신조>라는 노래집에 <북천가>라는 제목으로 옛 시조에 새로운 가락을 붙인 창작곡인데, 마치 오래전부터 불러온 노래처럼 말붙임과 선율이 잘 어울린다. 그래서일까. 정말 많은 이들이 이 단순하면서도 느낌 좋은 <북천가> 원곡을 각자 자신의 스타일로 재해석해서 불러왔다. 그때마다 각기 제목을 달리 붙였기 때문에 여러 스타일의 노래로 감상해보려면 가사의 첫구절 ‘북천이 맑다커늘’이라고 검색해야 한다.
여러 버전의 노래 중에서 이봉근이 앙상블시나위와 함께 부른 <찬비가>에 끌렸다. 음반에 실린 원곡도 좋고, 유튜브를 검색해서 듣게 된 프라임오케스트라와의 협연도 좋다. 따로따로 걷돌수 여러 요소들이 다행히 서로 어색하지 않게 만났고, 시나위 앙상블 멤버의 개성있는 연주들이 돋보이게 편곡된 작품과 원영석의 지휘도 다시 보고 싶을 만큼 좋았다. 이런 공연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이렇게 좋은 음악들이 우리 곁에 좀 더 오래, 좀 더 자주 우리 곁에 있어야 머물러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 노래의 뒷 여운은 아쉬움이 남는다. 잘 만들어진 이 음악이 ‘한 때 애창되었던 노래’로 남겨진다면 정말 더 아쉬울 일이다.
송혜진(숙명여대 문화예술대학원교수)
https://www.youtube.com/watch?v=xLAlBDBh3Oc&list=RDxLAlBDBh3Oc&start_radio=1
송혜진 숙명여대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press@ithemove.com